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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4:3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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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41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여러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귀신이 나가면 사람이 이제 정신이 온전해지지요. 맞잖아요? ‘저 사람이 귀신이 들렸나?’ 그렇게 보이는 사람 더러 있습니까? 없어요? 그냥 다 멀쩡하게 보여요? ‘쟤가 왜 저러지? 생전 안 하던 짓을’ 뭐 그런 거 있어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여러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안 나간 사람도 있을까요? 혹? 예수님 앞에 있으면서 귀신이 안 나간 사람도 있을까 그 말이요? 어떤 사람이 안 나갔냐 하면 예수님 앞에서 도망간 사람은 귀신이 안 나갔어요. 왜? 자기 정신이 멀쩡해 보이니까. 어제 귀신들린 사람, 몇 년 전에 귀신들린 사람, 수십 년 전에 귀신들린 사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기가 정상인줄 알았지요? 선악과 따먹은 저주받고 타락된 지식으로 사람을 보았으니까.
안 믿는 사람들 자기들끼리 미쳤다고 그래요? 그렇게 안 보여요. 다 정상으로 보여요. 그렇죠? 그럼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볼 때 정상으로 보입니까, 약간 헥가닥하게 보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믿는 자기를 봤을 때 약간 헥가닥해 보이는 거지요. 그래요. 꼭 아세요. 더더군다나 궁극교회 다니는 교인들을 봤을 때는 예수 믿는 사람도 어느 교회 교인하고 우리교인하고 세워놓고 안 믿는 사람 입장에서 딱 봤을 때에 어느 교인이 많이 헥가닥한 거 같아요? 그 있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 믿었던 예수님 앞에 왔을 때는 ‘아, 내가 이 면에 이 면에 고쳐야 되겠다.’ 바른 것이 보이니까. 그러니까 어떤 면으로 보면 각색 여러 가지 병자다. 귀신들렸거든. 정신면에 성격 면에 성질 면에 예수님 앞에 나와서 나음을 많이 받는단 말이요. 나아가는 중이고. 그런데 이제 나아서 다른 교인하고 안 믿는 사람하고 딱 봤을 때 잘 보입니까? 저게 뭘 먹고 지금 침을 흘리고 눈이 돌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요? 교회 다녀도 세상 쪽으로 믿는 그런 거 봤을 때 ‘아이고, 저거 마귀에게 씌웠구나’ 그런 것도 보이는 겁니까? 정확하게 보이는 거지요.
근데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지식적으로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영적으로 이게 논할 수가 없어요. 그들은 못 보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들 고집으로 자기처럼 안 돼 있으면 무조건 ‘나쁘다. 이단이다. 죄다’ 그렇게 말을 하지요. 우리는 신앙 면에 판단. 사람의 정신 향방 소원 목적,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으로 정확하게 들어가지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으로 나아졌으니까. 나아진 사람은 그게 다 판단으로 보이는 거지요. 안 나아졌으면 그들하고 단짝이 된 거지요. 맞잖아요? 우리는 진리의 눈 성령의 눈을 가지고 사람을 봤을 때 그렇게 형형 각색으로 다 나오지만 만약의 경우에 안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지식처럼 가지고 그렇게 논하면 이건 큰일 날 소리. 그걸 알아야 돼요.
이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주를 만나게 되니까 사람이 교정이 돼요. 교정되고 성화되는구나. 예수님과 똑같은 그런 사람으로 질적으로 이게 만들어져서 올라가는구나. 그 정확한 사람이요. 그게. 그게 그리스도의 사람들이요. 그 영과 육이 성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참 사람이요. 변화 부활을 그대로 받으면 창조의 목적대로 그대로 들어간 사람으로 돼 들어가는 거다.
예, 연령적으로 관계없이 신앙이 어두워지고, 신앙이 시대적으로 어두워지고, 세상육적 옛사람 부패성적 비진리적 마귀적 인본주의 사고방식으로 흐르는 교회들을 많이 볼 수가 있고 그런 활동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건 연령과 관계없어요. 한 그물에 속한 고기 같아서. 이 교회 저 교회 막 모여서 그런 활동들을 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이 성경을 보니까 귀신들린 그들도 나사렛 예수도 알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도 알더라.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었어요. 그들이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을 허락치를 아니했어요. 자기 타락된 기존적 지식을 버리고 하늘의 지식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말하면 그건 허락이 되지만 타락된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말하게 되면 예수를 말하고 그렇게 하게 되면 이게 어찌 되겠냐? 어찌 될까요? 의로운 사람이 말하자면, 예를 드는 겁니다. 자기 나라의 대통령을 칭찬을 하면 이게 가치가 있어요. 근데 이 도둑놈이 자기 나라 대통령을 칭찬하면 이게 어떻게 되지요? 다른 사람이 들을 때에 ‘아, 도둑놈의 대통령이로구나’ 그렇게 들어가지요? 맞잖아요? 이치가 그렇게 들어가지. 바로 만들어진 사람이 전도를 하는 이게 바로 된 사람이지 사람이 안 되었는데 귀신이 들어가지고 귀신이 전도하는 격이 됐으니 예수님이 허락 하겠어요?
거짓말도 잘하고 남의 돈도 잘 떼어먹는 이 사람이 가령 나가서 전도를 합니다. 그럼 어찌 될까요? 바로 되는 거요? 얼마나 욕을 얻어먹겠나? 그 교회도 욕먹고 목사도 욕먹고 예수도 욕먹고 그 교회 전체가 다 욕먹는다. 허락지 아니한다. 아는 사람이면 뭐라고 말 할까요? ‘너나 잘 믿어라. 너 따위가 무슨 교회냐’ 이러면서 얼마나 더러운 소리가 들리겠냐?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정결한 사람으로 바로 되어야 할는지?
귀신들린 사람이 전도를 많이 해가지고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와서 귀신 전도대를 만들면 어떨까요? 전도 많이 한 그 사람을 예수님께서 전도부장으로 임명하면 안 될까요? 안 돼요? 그런 형식이 너무 많아. 오늘날 교회 안에 너무 많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은 그런 것을 허락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은 허락지 않는단 말이요. 저도 허락을 할 수 없지요. 전도하기 전에 저절로 전도가 나오게끔 사람이 바로 서기 전에는 참 힘들다. 안 그러면 전도한다는 게 사람을 완전히 못 쓰게 만들어버려. 아니면 자기편으로 만들어 놓고. 교회는 목사님들 세계는 안 그런 거 같아요? 정말 지저분하고 더러워요.
선악과 따먹은 지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생명과 먹은 지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는 이건 하늘과 땅 차이다.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그 사람 속에 신앙의 질은 이건 하늘과 땅이요. 질이 전혀 다른 거요. 알겠어요? 아닌 말로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진리가 어쩌고저쩌고’ 판단할 수 있나요? 판단할 수가 없는데 ‘진리가 어쩌고’ 그래요. 굉장히 신앙이 깊은 거 같지요? 아니다. 너 못 쓰겠구나. 사람 못 쓰겠다. 이거.
이치적으로 이렇게 생각을 해봐요. 진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 하나님의 절대적으로 옳은 것. 신령한 것. 이 하나님의 것을 나무그릇에 담기겠습니까, 유리그릇에 담기겠습니까, 은그릇에 담기겠습니까, 금 그릇에 담기겠습니까? 말하자면? 그릇으로 말하자면 어느 그릇에 담고 싶습니까? 금 그릇. 성경에 있잖아요? 금 그릇에 담는다. 누구든지. 이치가 그렇다. 그런데 이게 사람으로 말하자면 금 그릇도 아닌데 ‘진리가 어쩌고’ 그러면 그게 바로 된 거냐 그 말이요. 바로 안 됐다. 이거. 진리의 가치는 그렇게 나오는 게 아니다. 네가 먼저 그릇으로 되고 그 다음에 담겨져서 나온다면 참 귀한 것으로 나오게 되는 거다. 이치다. 그릇이 아예 그릇으로 안 돼 있는데 어떻게 담기냐?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신앙과 자기의 뜻을 이루어달라는 신앙이 어찌 같으냐?
선악과 먹은 지식의 신앙사상은 자기 신앙정신 사상을 점검을 못해요. 할 수가 없어요. 왜 못 하느냐? ‘일을 많이 해야 믿음 좋다’ 하는 신앙지식이지 사람을 볼 줄 아는 진리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조차도 못 본다 그 말이요. 귀신들린 사람은 자기 속에 귀신들린 것은 안 보입니다. 어떻게 알아요? 선악과 따먹은 지식으로 어떻게 알아. 못 본다. 안 된다.
주일날인데 예수 믿는 사람이 딴 데 가서 있으면 정신 바로 된 거요? 정신 바로 못 됐구나. 성경은 그렇게 보는 거요. 하나님은 그렇게 보는 거요. 근데 ‘자기는 바로 됐다’ 라고 하는 거지. 맞잖아요? 그나마 신앙이 좀 있는 사람은 자기 양심을 자책을 할 테지요. 안 그럴까요? ‘다음번엔 그러지 말아야지.’ 계속 자책은 하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안 산다면 크게 다친다. 여기에서 큰 책망이 들어가는 거다. 이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책망할 때 그냥 당장 콱 죽어버리면 괜찮지만 그럴지 않을 때는 이게 어떻게 될 거냐? 자타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왜 고통을 안겨주게 되느냐? 회개하라. 회개하라. 고통이 올 때는 회개하라. 그건 못 속여요. 각자 양심을 못 속여. 고통을 당하는 자기 양심을 어떻게 속여요. 회개하는 수밖에 없지.
새는 낮에 활동을 하고 쥐는 밤에 활동을 하는데 어둑어둑할 때 활동을 하는 건 뭐지요? 박쥐. 진리가 어두워지면 귀신들린 종들이 무더기로 나온다. 참 그래서 보면 어디서 목사들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몰라. 누가 그렇게 하는지 몰라. 신학교에서 그렇게 하는 거지. 그러니까 목사들도 이건 십 년짜리 목사, 칠 년짜리 목사, 이 년짜리 목사, 일 년짜리 목사. 어디 들렸다 나오면 그냥 목사 된 거요.
뭐 어쨌든 십 년이든 수십 년이든 몇 년 걸렸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앞에는 바로 질이다. 당신의 본질. 신앙이 바로 당신의 그 구원목적에 적중성으로 들어가야 이게 바른 건데. 그러니까 십 년 이십 년을 공부해서 목사 된 사람이나 일 년 이 년 공부해서 목사 된 사람이나 같이 어깨동무해가지고 목사하면서 같이 일을 하니 이게 도대체가 뭐냐 그 말이요. 이거 웃기는 세상이다. 교인들은 그걸 아나? 모르지.
그런데 문제는 귀신들이 왜 들어갑니까? 귀신들이 왜 들어가요? 그것도 잘 알아야지. 예수 믿는 자기가? 귀신이 왜 들어가요? 그냥 아무 데고 귀신이 들어가니까 그냥 그런 겁니까? 귀신이 그냥 제 맘대로 아무 데고 그냥 들어가는 거요? 귀신이 왜 들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자기 속에 채우면 귀신은 안 들어가고 못 채우고 있으면 들어간다. 예, 이치적으로 말하자면 똥냄새 나는 곳에는 똥파리가 가게 돼 있다. 안 가게 하려면 똥냄새를 치워버리면 될 거 아니요? 똥을 치워버리면 될 거 아니요? 이치가.
산꼭대기에 화장실도 없는데 똥파리가 날아다녀요. 가만 보면 이게 바람 부는 곳에서 쓱 날아와요. 그러니까 똥파리는 비릿한 냄새, 비리비리 한 거, 그 다음에 된장냄새, 고기 썩은 거, 시체 썩은 거. 죽었다 그러면 여긴 똥파리가 오는 거요. 알겠어요? 정신 바짝 차려요. 예수 믿는 정신이 죽었다 그러면 여기는 사람인지라 제 성깔대로 살고 있어. 귀신이 들어간다. 이거.
이제 예수님으로부터 허락지 않는 짓은 그만하고 주님 따른다는 소속과 입장이 뭔지 철두철미하게 점검을 하고 자기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고침을 받고 온전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 자녀로서 손색이 없어야 될 것이다. 귀신들리고 마귀 들린 자는 이제 그런 마음이 안 드는 거지요. 지금.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고침을 받고 나는 손색이 없는 사람으로 돼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무엇이 있는 사람은 안 든다고요? 귀신들린 사람은 그런 마음이 안 든다. 그럼 어떤 마음이 들어가는 거 같아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입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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