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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욜3: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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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온라인새벽기도(2680) 2019년 10월 25일(금) |
평안을 추구하라 (요엘 3장 7-13절)
< 평안을 추구하라 >
외적인 평화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 안에서 평화를 이루어내는 내적인 평안이다. 그 평안을 언제 얻는가? 기본적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죄는 평안을 빼앗는다. 최근에 가짜 박사 문제가 불거지면서 많은 박사 목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언제 논문 검사하자고 할까봐 장로들 앞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있다. 큰 교회 담임목사라면 당연히 걸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편법으로 받은 외국 신학교 박사 학위가 부메랑이 되어 지금 많은 박사 목사들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라고 한다. “나 떨고 있니?” 죄는 평안을 빼앗는다.
죄 사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합리화나 회피가 아니라 믿음이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심령의 자유와 평안을 찾으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생각은 사람 기준에 의한 바른 행동을 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못된 행동을 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행동도 잘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행동보다 사람의 중심을 더 살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어떤 교회에 심한 골초가 있다. 주일 예배 때 교우들은 그 사람 근처에 가서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담배 냄새가 확 풍겼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아멘!”도 잘하니까 목사는 그 성도도 변함없이 사랑했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예배에 꾸준히 참석하는 것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난 중에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고 은밀하게 헌신하는 사람도 고맙지만 술 담배를 하면서도 꾸준히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도 고맙다. 자신은 “술 담배를 해서...”라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을 목사는 “술 담배를 해도...”라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성도의 생각과 목사의 생각이 그렇게 다르듯이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그렇게 다를 수도 있다. 주일아침에 부부싸움을 했거나 다른 일로 속상해서 예배드릴 기분이 아니어도 변함없이 주일성수를 하면 본인들은 잘 체감하지 못해도 목회자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목자장 되신 예수님도 똑같이 고맙게 여기실 것이다. 부족한 모습이 있어도 꾸준히 예배에 나오는 사람이 제일 복된 사람이다. 그렇게 예배하다 보면 언젠가 부족한 것을 극복하고 대 평안을 노래할 때가 올 것이다.
< 살면서 분명해 해야 할 것 >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내적인 평안이 있어야 한다. 그처럼 죄의 문제를 해결한 성도가 내적인 평안을 얻으려면 살면서 분명히 해야 할 4가지가 있다. 첫째,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자기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추구하는 일이 자기에게 맞는 정당한 일이라고 확신하면 그런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안과 행복이 생긴다. 사도 바울이 고난 중에도 평안과 기쁨이 잃지 않았던 것은 삶의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둘째, 소속이 분명해야 한다. 한 사람에게 매이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길임을 아는 사람만이 결혼 자격도 있고 행복과 평안도 얻는다. 고귀한 대상에게 스스로 매이는 것은 고귀한 자유를 준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 매이고 교회에 매이는 것은 고귀한 자유와 대 평안을 얻는 최대 전제조건이다. 그처럼 마음과 몸과 삶을 모두 예수님의 손에 맡기면 환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얻을 것이다.
셋째, 천국 소망이 분명해야 한다. 종말이 불확실하면 아무리 소유가 많고 권세가 있어도 평안이 없고 그때는 몸이 조금만 아파도 겁이 덜컥 난다. 사도 바울의 마음과 머리에는 복음과 천국 소망으로 꽉 차 있었다. 그처럼 늘 천국을 사모하며 살았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천국의 평안을 잃지 않았다. 천국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면 다른 문제는 다 작게 느껴지면서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얻는다.
넷째, 나눔의 삶이 분명해야 한다. 평안은 나눔과 비례한다. 나눌 줄 모르면 마음이 궁핍해지고 결국 삶도 궁핍해지지만 잘 나누면 마음이 풍성해지고 결국 삶도 풍성해진다. 잘 나누려는 마음도 구하고 잘 나눌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도 구하라. 가난하면 잘 나누기도 힘들고 삶이 비굴해지기 쉽다. 또한 가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때도 많다. 청빈한 삶이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삶에 만족하지 말라. 때로는 차선의 삶이 최선의 삶에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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