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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s://news.khan.kr/Da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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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듣고 있네
내 안에 들어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는
한 톨의 쌀의 노래
그가 춤추는 소리를
쌀의 고운 웃음
가득히 흔들리는
우리의 겸허한 들판은
꿈에서도 잊을 수 없네
하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엄마의 마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희망을 안쳐야지
적은 양의 쌀이 불어
많은 양의 밥이 되듯
적은 분량의 사랑으로도
나눌수록 넘쳐나는 사랑의 기쁨
갈수록 살기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아야지
밥을 뜸 들이는 기다림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희망으로
내일의 식탁을 준비해야지
-시집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에서
농촌진흥청에서 나오는 잡지에 이 시를 싣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쌀 소비가 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어떤 기사를 읽고 제가 나름대로 쌀을 예찬해 본 노래입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푸른 논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게 쌀나무란다. 저 안에 쌀이 들어 있어’ 하면 가녀린 풀잎 속에서 어떻게 딱딱한 쌀이 숨어 있다는 것일까 한참을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정 한 톨의 밥이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하면 밥을 먹을 때마다 더 경건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먹게 됩니다. 제가 속한 본원공동체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아침식사에 빵을 먹고 두 번 정도는 저녁에 죽이나 국수를 먹고 나머지는 늘 밥을 먹는데 한결같이 밥만 선호하는 자칭 ‘밥순이’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소임을 할 때도 밥의 힘으로 살기에 밥은 결코 물리는 일이 없는 주식이며 그래서 우리도 누구에게나 밥과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며 밥의 영성을 서로 나누기도 합니다.
얼마 전 당진군에 있는 솔뫼 베네딕도의집, 우리 수녀원에 들렀다가 친구 수녀가 책임지고 돌보는 논에 나가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데 그가 새삼 감탄을 하며 말했습니다. ‘수녀님, 벼에도 꽃이 있는 거 아세요? 너무 작으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벼가 다 익을 때쯤 되면 정말 밥냄새가 난다니까요.’
우리가 웃으면서 쌀을 예찬하는 소리를 들판의 벼꽃도 들었을 거라 믿습니다. 엊그제는 예쁘게 포장된 쌀을 선물로 받았는데 밥을 따로 해 먹을 일은 좀체 없지만 그래도 언제 한 번 공동식탁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따로 밥을 지어 먹으며 황금빛 들판을 마음에 담는 기쁨을 만끽해야겠습니다. ‘적은 양의 쌀이 불어 많은 양의 밥이 되는’ 사랑의 신비를,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의 영성을 새롭게 묵상하고 되새기면서!
이해인 수녀
경향신문 201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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