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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s://news.khan.kr/o8t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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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긴 겁이 나서
늦게야 대면하는
내 몸의 상처
상처는 소리없이 아물어
마침내
고운 꽃으로 앉아있네
아프고 괴로울 때
피 흘리며 신음했던
나의 상처는
내 마음을 넓히고
지혜를 가르쳤네
형체를 알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지 못해
힘들었던 날들도
이제는 내가
고운 꽃으로 피워낼 수 있으리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에서
언제부터인가 저는 길에서 누가 휠체어를 탔거나 깁스를 해서 아픈 것이 눈에 띄는 이들에겐 선뜻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낯선 이가 말을 거니 처음엔 경계심을 갖고 잠시 의아해하기도 하지만 아픔에 대해 공감하면서 이야길 나누다 보면 친근해져서 아픔을 다스리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도 주고받으며 기도를 약속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서울에 갔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상처의 교훈’이란 이 시가 힘들 적마다 크게 도움이 되었다면서 5년 전에 제가 친필로 적어 준 쪽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상처는 소리없이 아물어/ 마침내 고운 꽃으로 앉아있네’라는 구절을 되뇌며 마음을 다독였다고 했습니다.
11년 전 큰 수술을 하고 나서 생긴 보기 흉했던 상처가 어느 날 흔적은 남았어도 곱게 아문 것을 보고 적었던 시입니다. 상처는 결국 시간이 지나야만 제대로 아문다는 것을 몸이 말해 주었습니다. 인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굴면 상처도 화를 내서 그 덧난 상처로 인해 다시 고생이 시작된다는 것을! 믿는 마음으로 순하게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함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막상 아픔이 오면 일단은 피하고 싶은 게 사실입니다.
요즘 저는 치과에서 계속 큰 치료를 받고 있는데 마취주사, 신경치료, 엑스레이 찍기, 본뜨기 등등 그 과정이 어찌나 아프고 불편한지 온몸이 함께 괴로워 며칠간은 계속 누워 있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았습니다. 평소에 제대로 관리를 못해 고생을 하는구나 싶어 스스로를 원망도 해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프다고 할 적엔 그저 그런가 보다 건성으로 넘기다가도 정작 나 자신이 아프니 그 아픔이 한층 절실하고 크게 다가오는 현실적인 이기심을 못내 부끄러워하면서 말입니다.
육체적 아픔이든 정신적인 아픔이든 잘만 극복하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달관의 경지를 맛보는 체험도 하게 됩니다.
쓰라린 것, 쑤시는 것, 콕콕 찌르거나 톡톡 쏘는 것, 짓누른 것, 가려움을 동반한 화끈거리는 것까지 통증의 다양한 종류를 구별해 가면서 약간의 유머를 지니고 대면하는 여유까지도 생깁니다. 도무지 이유와 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종류의 마음의 통증까지 시시로 겪다 보면 어느 순간 담대해지고 의연해진 자신의 모습에 조금은 놀라기도 합니다.
하늘은 푸른데
나는 아프다
꽃은 피는데
나는 시든다
사람들은 웃는데
나는 울고 있다
어디에 숨을 수도 없는
이내 들키고야 마는 오늘의 나
내가 아픈 것을
사람들이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음을 기뻐하라고?
맞는 말인데
너무 아프니까
자꾸 눈을 감게 돼
옆 사람의 도움도 물리치게 돼… (이해인의 시 ‘통증단상’에서)
언젠가 쓴 이 글을 다시 읽어 보면서 앞으로 어떤 모양의 아픔이 오든 그것을 끌어안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싶습니다. 그 당시는 못 견디게 아팠지만 지나고 나면 그 상처를 꽃처럼 향기로운 훈장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상처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더 많이 감사할 수 있는 행복을 얻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이해인 수녀
경향신문 201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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