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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5:2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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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5장 27절-30절.
27절-28절: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지난주도 한 것 같습니다만 레위를 부르시니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좇았다. 즉시 좇았다. ‘나 따라올래?’ ‘누군데요? 잘 모르고 안 가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요?’ 우리 인간 편에서 보면 그럴 수 있을 텐데 즉시 따랐다 한 걸 보면 추측컨대 그 전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익히 들었었거나 또 예수님이 전도하실 때에 이제 그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거나, 그러니까 예수님을 사모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즉시’ 라는 말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도 보이고요, 또 하나는 어떻게 보이는가 하니 하늘나라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이 자기에게 인사도 없이 온다고 하더라도 자기에게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즉각적인 판단. 예, ‘이래볼까 저래볼까’가 아니고 이건 즉시.
그러니까 레위라고 하는 사람은 이방 불신자들 그런 생각으로 부르는 건 아니다. 레위도 마찬가지. 역시 유대고을 안에 사는 사람이고 해서 이제 그 하나님의 말씀이라든지 안다 그 말이요. 레위, 구약성경에 비슷한 이름이 없나?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 된 자로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옳음을 사모하고 역사적으로 배경적으로 볼 때에 로마 강대국이 자기 나라를 속국으로 삼았을지라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그 마음, 옳음을 기다리는 그 마음,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그 마음. 로마라고 하는 세상성적 육적 옛사람 부패성적 마귀적 그런 사상이 둘러싸였을 때에 레위가 예수님을 즉시 따랐다는 것에서 그 따르기 전의 마음 상태를 우리는 추측해 볼 수가 있더라. ‘부르니 그냥 끄떡끄떡 따라갔다’ 이건 될 수가 없습니다.
예,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 옳음을 찾을진대 비판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옳음을 찾을진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인간이 사는 삶의 노선이요 교훈의 이치요 그 사상의 길로 그 이치를 받고 가면 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만들어지는 사람이다. 이게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사람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온전화로 된 성령의 열매로 된 사람이다. 그래서 옳은 것을 들으면 즉시 고칠 줄 알아라. 우리 초등하교 때 시험 친 후에 선생님이 맞는 답 쭉 알려줘요. 그럼 틀린 사람은 그 옳은 답을 빨리 빨리 써야 돼. 어물거리다간 그냥 넘어가 버려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그것 붙들면 자기의 능력화 되는 거고, 그것 붙들면 자기의 주권이 되는 거고, 그것을 붙들면 자기는 점점 최고가 된다. 존영스러워진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것을 붙들면 자기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틀림이 없다. 근데 유형교회 나가는 것이 그냥 예수 따르는 것이냐? 아니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거짓교회가 간판 안 붙였느냐? 이름 안 써놨느냐? 이단자들이 교회간판이 없느냐? 이마에다 이름을 써놨느냐? 마귀가 ‘나는 마귀입니다’ 그렇게 하냐? 그렇지 않아요. 예, 거짓된 사람의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사상이요. 마귀의 짓을 한단 말이요. 그 마귀 들어간 사람. 오늘날 교회 안에 많아.
자기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본질적인 면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것을 붙들고 사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격이라 그 말이요. 그건 왜 그러냐? 자기의 모든 삶에 뭘 하든지 목적이 그렇게 돼있고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이요. 그런데 이방신관적 사상을 가지게 되면 종교적인 행위를 해야 믿음의 사람이라고 이렇게 단언을 내리기 쉽다 그 말이요. 정신 사상적으로 잘못 알고 있구나. 그럼 기독교 안에서 목사사기꾼이 종교적 행사를 벌리면 진짜라고 볼 것 아니겠냐? 안 그럴까요?
세상에는 가짜투성이. 예, 가만 들어보면 방송에도 오늘인가 어젠가 들어보면, 어제 들었나? ‘법만 강조했지 사람의 양심은 없구나’ 이런 걸 느꼈어. 그러니 어떻게 되겠냐? 얼마나 억울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겠냐? 고통을 당할까? 그것을 느꼈어요. 보이는 거만 증거 삼아 하려면 죄를 지었어도 증거물 싹 없애면 되는 거요. 맞잖아요? 세상은 허점투성이니 절대 완전이라고 보지 말고, 유형적인 것만 기준 삼아서 따라가지 마라. 외부 표면 모양 형체가 좋다고 따라갈 사람 있나? 마음은 어떤 줄 모르고? 생각의 사고방식이 어떤 한 부분은 맞는 것 같은데 전체 종합적으로 보면 틀리는 것이 무수히 많다. 누가 그러냐? 바로 인간 자기가 그렇더라. 틀렸으면 틀린 것을 시인을 할 줄 알아야 사람이 발전이 있고 깨끗해지는 법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법이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본질화 성품화 인격화 실상화 되는 것. 실상화 된 자기는 불에 타지지를 않아.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그건 신령한 것으로 들어가 있어. 그러니까 정신 사상 모든 목적 면에서도 안 믿는 사람은 쉽게 말씀드리면 불타질 것 눈에 보이는 걸 가지러 쫓아가는 거고, 모든 기독자들은 원리원칙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향해서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격화 성품화 하나님의 온전. 이건 사람에게 들어있기 때문에 안 보이는 거다. 근데 안 보인다고 모르고 부정하고 한다면 이건 어리석은 사람이다. 미련한 사람이다. 네가 사람을 볼 때도 그 면을 안 보느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그 신앙사상을 사상 면에서 정신면에서 바로 알아들어야 되겠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이뤄달라고 예수님을 믿는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게 아닙니다. 자기 주관적인 것을 타락적 세상적 육적 옛사람의 부패성적 마귀가 꾀이는 그런 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이지. 예수님은 마귀의 그런 말에 순종치 않았고 예수님이 마귀를 이긴 것은 ‘너희들도 그런 정신 사상에는 이겨라. 따라가지 말아라. 네가 그런 정신 사상으로 품지를 말아라. 마귀가 말한 정신 사상을 네가 품지를 마라.’
그런데 오늘날 설교 때마다 제가 목사님들에게 말씀을 드리기도 하지만 기독교 신문이 전부 세상이요. 세상을 따라가.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모양 형태 부피 덩어리운동만 생각을 하지 말고 그 속에 들어있는 사상의 방향을 영의 눈을 가지고 보란 말이요. 왜 그걸 따라가겠어요? 하나님의 종이 왜 그걸 강조하겠어? 예수님이 그렇게 못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자들이다.
오늘날, 모르지. 앞으로도 계속 상당히 유형교회가 많아요. 보통 많은 게 아니다. 그러면 그게 다 진짜냐? 큰 건 진짜고 작은 건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느냐? 네가? 그럴 정도로 네가 성경을 많이 읽었냐? 이단자들을 보고 뭐가 이단인지 네가 구체적으로 알게 할 수 있느냐? 남의 소리만 듣고 눈으로 보는 것만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이건 벌써 기준성이 틀려버렸어. 성경은 우리에게 기준을 주잖아요? 예수님이란 참 사람을 우리에게 기준으로 줬잖아요? 그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그랬잖아. 건물 따르라 그랬어요? 덩어리 따르라 그랬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따르라’ 그랬지. 어그러지고 패역한 자들이요.
예수님께서 레위 자기에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던 어떻게 찾아왔던 주님께서 레위 자기를 생각하시고 찾아오심이 그렇게 기쁘고 즐겁고 좋던가 그 말이요. ‘즉시’ 라는 말이 쾌히 기쁨으로. 예를 들면 대통령이 자기를 찾아오셨다면 ‘밖에서 기다리십시오’ 그러겠느냐 그 말이요. 하던 일도 멈추고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모를 거다. 레위가 얼마나 기쁘고 좋았으면 즉시 따랐을까? 자기 집에 오는 사람 중에 인사도 없이 예고도 없이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오면 되게 싫은 사람 있습니까? 간다고 연락을 해도 되게 싫은 사람 있고. 그렇지요? 불쑥 찾아와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고 그렇게 반갑고 그런 사람도 있습니까? 예수님이 오늘날 자기에게 찾아오신다면 사건을 붙잡고 사람을 붙잡고 교훈을 붙잡고 찾아오신다면 자기는 어떤 태도로 나올까?
이야기꽃이 세상사람들은 세상 쪽으로 쭉 얘기하면 기분이 좋아요. 그렇지요? 근데 ‘예수님’ 하고 예수 말이 나오면 그만 시무룩해지면서 흐린 날씨가 돼버려. 그렇지요? 예언 방언 이게 신비주의 하는 사람들은요 진리 말하면 계속 졸고 있다가 그 말 나오면 그냥 살 판 나는 거요. 제 세상이요. 이게 감화성이 달라요. 어린아이들이 어른설교 들으려면 죽을 지경이지요. 몸살 나서. 근데 어린아이들 식으로 놀아 봐요. 신바람 나는 거요. 그렇지요? 교훈의 질, 그리고 신앙 면에서 정신 사상적인 면에서의 성장성 그런 게 다 나오는 거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골 백 살 먹도록 예수 믿어도 교회는 아무리 오래 다녀도 아무리 목사라도 일반적인 네 성격 성질 못 고치면 은혜 못 받는다. 다 둘러엎어 버린다. 알겠어요? 아무리 ‘진리 진리’ 하다가도 성격적으로 대립이 되면 자기들끼리 원수가 딱 돼버려. 요건 진리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게 아니고 인간의 감정으로 원수가 돼버려. 그런 목사들이 허다하다. 이거 어디 일반적으로 돼먹지를 못해가지고 어떻게 목회냐? 이거.
하나님께서 사람 만들어지라고 사건 환경을 이리저리 몰아붙이면 인간 자기 입장에서는 자기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들 텐데 어떻게 은혜 받을 수 있으냐? 은혜 못 받는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은혜 못 받는다. 주는 은혜도 못 받지만 죽을 때까지 성경연구해도 그 성격 성질 뜯어고치지 못하면 너는 성경은 안 열리는 거다. 너에게는 안 열리는 거다.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입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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