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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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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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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모든 중심에 있어 그리스도가 과연 0순위인가!
고은교회 황부일목사
<교회됨의 합당한 도리>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 된 한 거룩한 생명체입니다.
때문에 교회된 모든 성도들은 늘 그리스도안에서 그 분과 함께 살아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의 삶의 제일이고 전부가 되는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된 몸에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삶의 중심과 순위에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0순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된 자의 마땅한 일이고 또한 구원의 합당한 삶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의 삶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0순위가 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고 하고 삶의 목적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고 확언하는 신앙의 지도자들이나 교인들이 보이지만 그들은 그런 자신들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0순위>
로마서 14:7~9절울 보면,
"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22:37-40을 보면 어떤 율법사가 예수께 율법 중에 어떤 계명이 제일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 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무엇을 말씀합니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제일이고 전부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중 제 일계명이 나 외에 위하는 신을 두지 마라 하신 것입니다. (신 5:7)
예수께서 제자들을 천국 복음을 전하러 내보내시면서 당부하신 말씀 중에 보면.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아니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고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37-39)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보다 그리스도의 종 된 사역자들은 그리스도가 0순위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주를 위하여 그 분의 교회를 제대로 사랑하고 복음을 위해 충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보다, 아니 내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고 제일로 여기고 모든 삶이 그리스도로 우선 중심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교회된 모습을 누구나 가질 수 없고 하나님 아버지 중심의 나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곙를 보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가 0순위가 아닌 경우를 많이 봅니다.
수많은 신앙의 지도자들이 어떤 상황에 닥치고 자기 입장이나 갈림 길 같은 상태에서 보면 그들이 증거하고 말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제일이 아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돈이 우선이고 형편이 우선이고 자기 목적이나 생각이 우선이고 다수의 편에 먼저 서고 하는 것을 봅니다.
무엇보다 현 시점에서 볼 때 그런 정황은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가령 교단통합이라는 문제로 인해 서로 나뉘고 한편으로 치우쳐야 할 중요한 기로에서 볼 때 대 다수의 목회자들이 그리스도가 0순위가 아니었고 형편이었고 대세의 흐름이었고 하나님 편에 서고 진리 편에 서야하는 목회자들이 전혀 엉뚱하게도 다수의 편에 섰고 여러 조건 따라 방향을 바꾸고 자기유익을 먼저 찾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는 우파냐 좌파냐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이나 정치적 상황이 크게 대두되는 시점에서 많은 신앙의 지도자들이나 목회자들이 비진리편에 서고 인본주의 편에 서고 진영논리에 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혁주의라고 평상시 말하고 교회에서는 그런 신학과 신앙을 가르치며 그런 개혁 모임까지 열심히 하는 목회자들이 어느 한 순간 우리나라 고질적인 지역논리에 더 편중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말하고 설교하던 신학이나 신앙의 상태는 보수고 복음적인데 막상 정치적 입장 상태에서는 지역 감정이 우선이고 출신 입장이 먼저고 진영 당파가 우선인 것을 봅니다.
아예 노골적으로 언론지에 그런 입장을 당당히 밝히기도 합니다.
수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설교하며 사는 교회지도자들이 하나님이 제일중심이 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0순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신도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대체적으로 주를 통한 자기 기대고 세상이거 형편인 걸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고 (마 15:8) 지적하신 말씀 그대로 많은 교인들의 중심이 그러한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가 그들의 실제 삶 속에서는 제일이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하나님이 제일 순위가 될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의 실제 중심이나 속셈들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가 드러난 셈입니다.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며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주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0-21)고 증거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가 전부고 모든 삶에서 그리스도가 제일이고 우선이어야 함이 진정 그리스도의 종이고 그를 위해 부름 받은 복음의 일꾼들인데 어찌 이 시대는 목회자들은 대체적으로 그렇지 못할까요?
<그리스도가 0순위여야 참 구원의 삶이 된다>
고린도후서 5:15절을 보면 ,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삶이 이제 어디에 있는가를 잘 말씀해 주는 구절입니다.
죄의 허물로 죽었던 인간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자기 욕심을 구하며 사는 형벌의 삶을 살았었습니다.(엡 2:1-3)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는 말씀대로 사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속의 은혜를 입고 죄와 그 사망에서 구원받은 성도된 우리는 이제는 구원받은자로서 구별된 구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이제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로지 주를 위해 사는 것에 바로 참 구원의 삶이 된 것입니다.
그런대도 아직 교회된 자들이 오히려 주를 통해 먼저 자기 유익을 구하고 함께하는 유익을 우선하는 경우가 기독교안에 너무 많은 것입니다. 때문에 이들의 삶은 입술로는 주여주여 하지만 마음은 다른데 가있고 삶의 우선순위가 그 마음이 가 있는대로 정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안에 있는 자들인데 삼의 순서 혹은 한순간 어떤 상황에서 결국 자기 유익중심, 가족중심, 돈 중심, 세상 영광이나 보이는 보화중심,
인간관계중심, 이념중심으로 입장을 가지는 것입니다.
구원이 없거나 아니면 구원은 은혜를 입었어도 실제 삶의 중심은 아직 인간중심 자기 생각중심 형편우선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을 보면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번제로 바치라 명하셨을 때 그대로 이행했습니다. 주가 그에게 0순위가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정녕 그리스도인이 맞다면 우리의 모든 삶의 전부는 그리스도여야 하고 그가 제일 우선 순위인 0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디베랴바다로 다시 고기잡으러 간 베드로를 찾아가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세번씩 물으시고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내 양을 먹이고
치라고 사명을주신 겁니다.(요21:15~17)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0 순위로 제일로 사랑하는 중심이 되었을때
교회를 맏기신 겁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13:8)라고 증거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몸 되시고 머리되심을 아십니까! (엡1: 22~23)
그런데 실제로 보면 교회에 목회자가
머리거나 장로들이 머리인 경우도 있고 민주주의로 한다고 회중이 머리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교회들 중심이나 하는 일들이 그리스도가 제일이 될리가 만무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4:11~12절을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의 은혜가운데 먼저 그리스도가 제일되고 0 순위가 되는 복음의 신실한 사역자가 교회에 있어야 양무리의 본이되고 성도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역을 하게되고 오로지 그리스도로 함께 서가는 참으로 성장된 거룩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에 보면,
"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속에서 머리가 되시고 주인되시고 주권자가 되시어 함께 연합된 거룩한 교회모습이 되길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정말 그분이 우리 중심과 삶에서 0 순위가 될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증인된 자가 되는것이며 그의 나라를 구원으로 살아가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
고은교회 황부일목사
<교회됨의 합당한 도리>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 된 한 거룩한 생명체입니다.
때문에 교회된 모든 성도들은 늘 그리스도안에서 그 분과 함께 살아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의 삶의 제일이고 전부가 되는 중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된 몸에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삶의 중심과 순위에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0순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된 자의 마땅한 일이고 또한 구원의 합당한 삶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의 삶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0순위가 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고 하고 삶의 목적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고 확언하는 신앙의 지도자들이나 교인들이 보이지만 그들은 그런 자신들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0순위>
로마서 14:7~9절울 보면,
"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22:37-40을 보면 어떤 율법사가 예수께 율법 중에 어떤 계명이 제일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 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무엇을 말씀합니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제일이고 전부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중 제 일계명이 나 외에 위하는 신을 두지 마라 하신 것입니다. (신 5:7)
예수께서 제자들을 천국 복음을 전하러 내보내시면서 당부하신 말씀 중에 보면.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아니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고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37-39)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보다 그리스도의 종 된 사역자들은 그리스도가 0순위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주를 위하여 그 분의 교회를 제대로 사랑하고 복음을 위해 충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보다, 아니 내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고 제일로 여기고 모든 삶이 그리스도로 우선 중심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교회된 모습을 누구나 가질 수 없고 하나님 아버지 중심의 나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곙를 보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가 0순위가 아닌 경우를 많이 봅니다.
수많은 신앙의 지도자들이 어떤 상황에 닥치고 자기 입장이나 갈림 길 같은 상태에서 보면 그들이 증거하고 말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제일이 아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돈이 우선이고 형편이 우선이고 자기 목적이나 생각이 우선이고 다수의 편에 먼저 서고 하는 것을 봅니다.
무엇보다 현 시점에서 볼 때 그런 정황은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가령 교단통합이라는 문제로 인해 서로 나뉘고 한편으로 치우쳐야 할 중요한 기로에서 볼 때 대 다수의 목회자들이 그리스도가 0순위가 아니었고 형편이었고 대세의 흐름이었고 하나님 편에 서고 진리 편에 서야하는 목회자들이 전혀 엉뚱하게도 다수의 편에 섰고 여러 조건 따라 방향을 바꾸고 자기유익을 먼저 찾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는 우파냐 좌파냐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이나 정치적 상황이 크게 대두되는 시점에서 많은 신앙의 지도자들이나 목회자들이 비진리편에 서고 인본주의 편에 서고 진영논리에 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혁주의라고 평상시 말하고 교회에서는 그런 신학과 신앙을 가르치며 그런 개혁 모임까지 열심히 하는 목회자들이 어느 한 순간 우리나라 고질적인 지역논리에 더 편중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말하고 설교하던 신학이나 신앙의 상태는 보수고 복음적인데 막상 정치적 입장 상태에서는 지역 감정이 우선이고 출신 입장이 먼저고 진영 당파가 우선인 것을 봅니다.
아예 노골적으로 언론지에 그런 입장을 당당히 밝히기도 합니다.
수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설교하며 사는 교회지도자들이 하나님이 제일중심이 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0순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신도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대체적으로 주를 통한 자기 기대고 세상이거 형편인 걸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고 (마 15:8) 지적하신 말씀 그대로 많은 교인들의 중심이 그러한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가 그들의 실제 삶 속에서는 제일이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하나님이 제일 순위가 될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의 실제 중심이나 속셈들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가 드러난 셈입니다.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며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주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0-21)고 증거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가 전부고 모든 삶에서 그리스도가 제일이고 우선이어야 함이 진정 그리스도의 종이고 그를 위해 부름 받은 복음의 일꾼들인데 어찌 이 시대는 목회자들은 대체적으로 그렇지 못할까요?
<그리스도가 0순위여야 참 구원의 삶이 된다>
고린도후서 5:15절을 보면 ,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삶이 이제 어디에 있는가를 잘 말씀해 주는 구절입니다.
죄의 허물로 죽었던 인간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자기 욕심을 구하며 사는 형벌의 삶을 살았었습니다.(엡 2:1-3)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는 말씀대로 사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속의 은혜를 입고 죄와 그 사망에서 구원받은 성도된 우리는 이제는 구원받은자로서 구별된 구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이제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로지 주를 위해 사는 것에 바로 참 구원의 삶이 된 것입니다.
그런대도 아직 교회된 자들이 오히려 주를 통해 먼저 자기 유익을 구하고 함께하는 유익을 우선하는 경우가 기독교안에 너무 많은 것입니다. 때문에 이들의 삶은 입술로는 주여주여 하지만 마음은 다른데 가있고 삶의 우선순위가 그 마음이 가 있는대로 정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안에 있는 자들인데 삼의 순서 혹은 한순간 어떤 상황에서 결국 자기 유익중심, 가족중심, 돈 중심, 세상 영광이나 보이는 보화중심,
인간관계중심, 이념중심으로 입장을 가지는 것입니다.
구원이 없거나 아니면 구원은 은혜를 입었어도 실제 삶의 중심은 아직 인간중심 자기 생각중심 형편우선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을 보면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번제로 바치라 명하셨을 때 그대로 이행했습니다. 주가 그에게 0순위가 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정녕 그리스도인이 맞다면 우리의 모든 삶의 전부는 그리스도여야 하고 그가 제일 우선 순위인 0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디베랴바다로 다시 고기잡으러 간 베드로를 찾아가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세번씩 물으시고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내 양을 먹이고
치라고 사명을주신 겁니다.(요21:15~17)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0 순위로 제일로 사랑하는 중심이 되었을때
교회를 맏기신 겁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13:8)라고 증거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몸 되시고 머리되심을 아십니까! (엡1: 22~23)
그런데 실제로 보면 교회에 목회자가
머리거나 장로들이 머리인 경우도 있고 민주주의로 한다고 회중이 머리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교회들 중심이나 하는 일들이 그리스도가 제일이 될리가 만무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4:11~12절을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의 은혜가운데 먼저 그리스도가 제일되고 0 순위가 되는 복음의 신실한 사역자가 교회에 있어야 양무리의 본이되고 성도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역을 하게되고 오로지 그리스도로 함께 서가는 참으로 성장된 거룩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에 보면,
"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속에서 머리가 되시고 주인되시고 주권자가 되시어 함께 연합된 거룩한 교회모습이 되길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정말 그분이 우리 중심과 삶에서 0 순위가 될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증인된 자가 되는것이며 그의 나라를 구원으로 살아가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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