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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엡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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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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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엡1:1-2)
저는 영국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가 안수를 받을 때는, 이름이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자연인 상태에서 목사안수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동안 제 이름에 가지고 있었던 모든 직함과 직분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냥 ‘김기성’ 씨가 됩니다. “오늘 김기성씨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목사안수를 받게 되어 김기성 목사가 되었습니다” 라고 선언을 합니다. 그래서 김기성 씨가 김기성 목사가 되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 그만큼 한번 받은 목사직은 다시 되돌릴 수 없고,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평생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목사로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 직분을 받을 때도 정말 신중해야 했고, 늘 목사라고 하는 의식을 잃지 아니하고, 그 소명을 다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하면, 예수 믿는 분들은 잘 알고 있지요. 그 사도바울이 에베소라는 하는 지역에서, 열심히 예수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요? ‘성도들’ 에게 편지를 씁니다.
성도들!! 예수 믿는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우리는 ‘성도’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성도 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성도? 교회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뭐 딱히 부르기도 그렇고, 뭐라 하기도 좀 그렇고, 그런 분들을 부를 때, 성도라고 하지 않는가요?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 라고 하면, 성도 위에 집사가 있고, 집사위에 권사 또는 안수집사가 있고, 그리고 장로, 그리고 목사가 있어서, 직분으로 따지면, 제일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게 생각하기에, 성도하면 별 부담 없이 부르고, 별 부담 없이 듣게 되는 명칭이 아마 ‘성도’라는 명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쉽게 부르는 ‘성도!’ 이 성도를 영어로 하면 느낌이 확 달라집니다. ‘성도’라고 하는 이 말을 영어로 하면 뭐라 할까요? 성도를 영어로 하면 세인트(saint)라고 합니다. 세인트요.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자 누구누구라고 하듯이, 세인트라는 말로 합니다.
(예를 들어 김준호 성도 라고 말하는 것보다, 성자 김준호가 되는 것이지요) 성도라고 할 때는 별 의미 없이 부담도 없었는데, 영어로 ‘성자 김준호!!’ 라고 하면 부담이 확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라는 이름은 교회 다니는 분들 중에 뭐라 딱히 부르기 힘들 때, 누구누구 성도님이라고 그냥 대충 명칭을 붙여 부를 수 있는, 간단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성도하면 ‘구별 되었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뭔가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최소단위는 ‘구별 되었다’ 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내가 믿지 않는 자들과는 다르게 ‘구별되었다’ 라는 생각과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요?
그래서 우리가 교회라고 말을 할 때, 건물이 얼마나 큰가를 보고, 그 건물을 보고 ‘교회’라고 말하지 아니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별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느냐에 따라, 정말 교회 사이즈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건물이 크고, 구별된 사람들이 많은 곳이 있을 수 있고, 또 교회 건물은 아주 큰데, 구별된 사람은 별루 없을 수 있고, 또 교회는 작지만, 구별된 사람들로 꽉 찰 수 있고, 또 교회도 작고, 구별된 사람도 없는 곳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우리교회가 무엇이 되길 원합니까? 최소한 우리는 교회는 작지만, 구별된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아멘) 예수 믿지 않는 세상 사람과 좀 구별된 생각과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나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나라 속한 사람이다. 나의 시민권은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나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라고 하는 생각과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이 점점 희미해진 것 같습니다. 그나마 주일날, 일요일 날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구별되었다고 생각하지요. 마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는 말씀에 온전히 따르는 것처럼, 일요일 전체를 마치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주일을 그렇게 거룩하게 안식일로 지킬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길어야 반나절 아닌가요?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야 두세 시간 아닌가요?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시간이, 그나마 구별된 시간이 됩니다. 결국 이 시간만이 구별되고, 나머지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적인 것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른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성도도 그렇고, 교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이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나, 또 세상이나, 교회나, 하는 모양이 비슷하게 되어 버립니다. 돈 좋아하고, 힘 좋아하고, 교회도 성공을 좋아하고, 교회도 돈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도, 교회도, 모든 일들을 세상적인 방법과 세상적인 모습으로 해결 하려고 하지요.
여러분, 어디서부터 이런 일들이 생겨났을까요? ’나는 성도다‘ 라는 생각을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래봬도 예수 믿는 사람이다. 내 안에 예수 생명이 있다!’ 라고 하는 ‘구별되었다’ 라는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면 교인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나온다고 모두 성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그 죄가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요. 그 보혈에 의지해서, 깨끗하게 살려고, 날마다 애쓰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교회에서 단지 몇 시간 구별된 것이 아니라, 평생 구별되어 살겠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바로 ‘성도’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성도입니까? 여러분은 교회만 다니는 교인인가요? 아니면, 성도인가요? 오늘 사도바울은 그 성도를 부르고 있습니다. 정말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여러분, 그 성도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읽은 1절 말씀에 있습니다. (시작) 에베소에 있는 누구와? 성도들과 그리고 예수 안의 누구요? 신실한자들.
여러분, 신실한 자들!! 성도를 명칭이라고 한다면, 신실한 자들은 그 성도의 성품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특징은 ‘신실함’입니다. 그런데 그냥 신실한자들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성경은, 예수 안에 있는~ 뭐라고요? ‘신실한 자들’ 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신실함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예수 믿기 때문에 그 사람을 믿을 만 하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신실하고,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이지요.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을 포함해서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을 만한가? 객관적으로 볼 때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이 보증수표가 되어야 하지요.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한번은 서울 경찰청에 가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계속해서, 저에게 경찰청 출입증과 경찰청에서 발행하는 명찰을 발급해 줍니다. 그것을 받아들고 어른 목사님에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이것은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라고 말씀드렸더니, ‘경찰청 들어올 때 이 명찰만 보여주면, 무상통과야’, 그리고 ‘혹시 교통위반하면 교통경찰관에게 운전면허증하고, 이 명찰 보여주고 좀 봐달라고’ 하면 봐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신호위반에 걸렸을 때, 그 명찰을 교통경찰에게 보여 주었을까요? 제가 보여 주었으면, 지난번에 벌점 받았겠어요? 그리고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목사가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교육 받았겠어요? (저를 뭘로 보고...) 저는 그 명찰을 받았지만, 한 번도 써 본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에 범칙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저는 아직도 영국 운전 면허증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 운전 면허증에는 그 사람의 신분이 적혀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스터, 미쓰, 미쎄스, 그리고 신분이 목사면, 목사의 신분이 운전면허증에 적혀 나옵니다. 그러니까 미니스터(목사) 라는 명칭이 붙어 나옵니다.
한번은, 제가 영국에서 신호위반으로 영국 경찰관에게 붙잡혔습니다. 면허증을 보여 달라 합니다.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신호위반 했기 때문에 벌금을 받겠구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저의 면허증을 보더니, 목사님이시군요. “목사님, 지금 어디 급하게 가시는지요?” 결혼식 주례, 병원, 아니면 장례 예배입니까? 저는 그때 긴장되어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관이 운전면허증을 다시 주면서, 조심히 얼릉 가시라고 하는 것이죠. 제가 신호위반해서 벌금 스티커를 받아야 하는데, 그분 생각에 목사는 신호위반을 안할 것이고, 한다면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을 한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만큼 그 사회는, 목사는 그렇게 신뢰를 받을 일을 하고, 또 누구보다도 목사님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요즘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목사하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어요. 리서치 앙케이트 조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물어 보더니, 마지막 질문을 합니다. “혹시 선생님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계시는지 물어보아도 됩니까?” “예, 저는 목사입니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오는 느낌을 보면 알잖아요. “어유 목사님이시구나... 라고 하면, 조금은 목사님으로 생각하는 느낌이 들지요” 그런데 상대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예”(예가 좀 길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목사라는 하는 신뢰도는 그 만큼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괜히 당당히 목사라고 했나?)
그러면서 생각하는 것이 과연 요즘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을 만한가? 신뢰할 만한가? 정말 그 사람하고 얘기하면 예수님의 인격이 그 사람에게서 보이는가? 를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신실하다는 것은 믿을 만 하다는 것이고, 그 사람에게 예수님의 인격이 나타나고, 성품이 들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이 구별된 ‘성도’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고 그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 당시 엄청난 로마의 권력 앞에서, 그리고 우상숭배 앞에서, 그들은 버텨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나사렛이라는 작은 동네에, 예수라는 청년이 33살을 살다가 간 그 사실만 믿고, 그 청년 예수의 도를 전하는 그들에게, 얼마나 힘이 있었을까요?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예수를 믿는 신앙이 그들을 완전히 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로마 전체를 뒤 덮을 만한, 구별된 성도의 삶과 신실함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와 그 당시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에베소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소수였지만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 믿는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세상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2019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넌 정말 얼마나 ‘구별된 성도’로 살았는가?‘ ’너는 정말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자 인가?‘ 여러분, 정말 진정한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신실한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내가 성도가 되려고 하고, 그리고 신실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내 안에서 분명히 일하십니다. 그리고 능력을 보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라고 할 때, 그 말에 권위와 신뢰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실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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