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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누가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662 추천 수 0 2020.01.16 21: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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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8:31-43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8.10.28 주일 설교 https://hopech.kr 희망의교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눅18:31-43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지금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은 왕이 된 후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얼마나 감사했는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은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많은 백성을 잘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지혜 구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영화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본문에도 이와 비슷한 기사가 나옵니다. 한 맹인이 결사적으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맹인은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구원을 주셨고 눈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계셨는데, 이제 여리고에 도착하시게 되었습니다.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35절)


  여리고는 예루살렘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이며,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24km 정도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리고에 도착했다는 것은 예루살렘에 매우 가까이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처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성전에서드릴 예물을 준비하여 가지고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죄인들을 위한 대속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구약에서부터 당시까지 드려온 유월절 양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5:7)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한 제물로 드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왕이 되실 것이며, 다윗 시대와 같은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왕국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자 제자들의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


  이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셔서 당하실 일을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31-33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세 번째 수난 예고’입니다. 앞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두 번이나 예루살렘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제 곧 예루살렘에 도착할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광스러운 왕국과 왕좌가 아니라 고난과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이 십자가를 향하여 흔들림 없이 걸어오셨는데, 이제 그 십자가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될 이 모든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그 모든 일은 구약의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31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잡히시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하실 것이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어쩌다 불가피하게 고난당하시고 죽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


  예수님께서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34절) 제자들은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누가 감히 예수님께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죄라고는 전혀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당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도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메시아관의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정치적, 또는 군사적인 영웅으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며, 다윗과 같은 왕권을 세우고 다윗 시대와 같은 왕국을 건설할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이런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면 왕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의 머리에는 온통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전혀 깨달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누가는 제자들에게 그 말씀이 감추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맹인과도 같았습니다. 누가는 다음에 한 맹인에 대한 기사를 기록합니다. 맹인은 예수님께로 와서 눈을 뜨게 되는데, 제자들은 영적으로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영적으로 어두운 가운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엉뚱한 일과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맹인을 만나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후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관문에 해당하는 여리고에 오셨을 때 한 맹인을 만나셨습니다.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35-37절)


  마가는 이 맹인의 이름을 바디매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막10:46-47) 마태는 그날 예수님을 만난 맹인은 두 사람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마20:29-30) 우리는 세 복음서의 기록을 종합하여 그 날의 상황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맹인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38절) 이 맹인은 예수님의 명성과 병 고치시는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맹인이 이렇게 소리치자 사람들은 그를 꾸짖었습니다.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39절)


  사람들은 이 맹인을 무시했고, 시끄럽게 떠뜬다고 욕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더 크게 소리를 질러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신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이 순간이야말로 그가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꾸짖고 욕해도 더욱 크게 결사적으로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당시 맹인을 고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한 맹인의 눈을 고쳐주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고침 받은 사람을 심문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요9:32) 만일 맹인의 눈을 뜨게 한다면 그는 메시아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구약에 그렇게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35:5) 그런데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요한이 기록한 맹인은 자기의 눈을 뜨게 해주신 이 분이야말로 메시아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이 기록한 맹인은 고침을 받고 나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맹인은 고침을 받기 전부터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 메시아이심을 믿었습니다. 구약에 메시아가 오시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구약에 예언된 다윗의 자손이신 나사렛 예수께서 자신의 눈을 고쳐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그런 일을 하신다고 예언되었으니, 예수님께서 자신의 눈을 고쳐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사적으로 예수님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 맹인이 사람들의 구박과 꾸중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크게 부르짖은 것은 그의 믿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와 재판장 비유를 통해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눅18:1-2) 이 맹인은 예수님께서 자기의 눈을 고쳐주실 수 있다고 믿었고, 고침을 받을 때까지 부르짖어 응답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께서 결사적으로 부르짖는 이 맹인을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40절) 주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불러주셨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은혜를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가는 이 사람이 겉옷을 버리고 뛰어 예수님께로 왔다고 기록했습니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막10:50)


  이 겉옷은 맹인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낮에는 이 겉옷을 펴놓고 구걸했으며, 밤에는 이 겉옷을 덮고 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왔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뛰어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여기 저기 부딪히고 걸려 넘어지면서 결사적으로 주님께로 달려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뛰어 주님께로 온 맹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41절) 왜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뻔한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 맹인이 원하는 것은 당연히 주님께서 그의 눈을 고쳐 보게 해주시는 것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이 사람에게서 믿음을 이끌어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맹인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눈을 고쳐주시리라는 것을 믿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메시아가 오시면 하실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질문은 “내가 너의 눈을 고쳐줄 수 있다고 믿느냐?” 또는 “너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메시아임을 믿느냐?”라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맹인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신 주님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은 “당신은 하나님의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성경에 예언된 대로 내 눈을 뜨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메시아로 확실히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소원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42절) 그러자 그는 곧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43절)


    무엇을 원하느냐?


  심방할 때마다, 그리고 새해가 될 때마다 저는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받습니다. 그것은 기도할 제목을 확실히 해두고 끊임없이 함께 기도하자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정말 꼭 기도해야 할 제목은 쓰지 않고,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상투적인 기도제목을 써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성도는 목사가 모든 형편을 다 알기 때문에 구태여 기도제목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주님께 간절히 정말 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예배 시간에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매일 기도할 때마다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십니까? 당신의 간절한 소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소원, 그 기도제목을 기쁘게 받으시고 들어주시겠습니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지혜 구하는 것을 흡족해하시고, 지혜뿐만 아니라 다른 축복도 넘치도록 주셨습니다(왕상3:10-13).


  부자 청년 관리는 재물을 사랑하여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여 구원과 예수님 따르는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해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놀라우신 교훈과 사역을 보고 들으면서 삼 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맹인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믿었고, 결사적으로 부르짖어 구원을 받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을 떴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았으며, 메시아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따랐습니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43절) 그의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많은 백성들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솔로몬이 왜 지혜를 구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본분을 잘 감당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이렇게 지혜 구한 것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모든 축복을 아낌없이 부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솔로몬의 인생과 통치에 놀랍고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당신이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인생과 영혼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그것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소원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인생에 충성을 다해 하나님 섬기는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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