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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 문제다] (에스겔 34:17-31)
1. 양의 문제
이스라엘 목자들에 대해 심판을 말씀하신 하나님이
양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겔 33:17-19, 새번역) [17]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 양 떼야,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18] 살진 양들아, 좋은 초원에서 뜯어 먹는 풀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먹다 남은 풀을 발로 짓밟느냐? 너희가 마시는 맑은 물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마시고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혀 놓느냐? [19] 내 양 떼는 너희가 짓밟은 풀을 뜯어 먹으며, 너희가 발로 더럽혀 놓은 물을 마시고 있다. [20]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그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직접 살진 양과 여윈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못된 목자만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만 제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못된 목자를 닮은 양들이 있었고,
목자들이 이방의 포로로 잡혀가자
못된 목자를 닮은 살진 양들이
자신의 배를 불리고 약한 양들을 괴롭혔다.
이 시대의 문제는 목회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못된 목회자들에게 배워서
못된 양이 된 살진 양들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
목회자의 범죄는 그나마 이슈화되기라도 하지만
교인들의 범죄는 숨어서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드러나지 않지만 온갖 성적인 타락과
일상에서 재정적인 비리들을 얼마나 많이 저지르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가지고 쾌락을 좇아 살아가면서
주일에 교회에 오면 거룩한 척 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목회자와 양들 모두가 문제인 슬픈 시대다.
2. 양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
살진 양들이 약한 양들을 괴롭히는
양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나님이 이 문제에 대해서 몇 단계의 해결책을 주셨다.
첫째, 심판
(겔 34:22, 새번역)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해 주어서, 그것들이 다시는 희생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고 내가 양과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누군가 악을 행한다면
반드시 심판으로 보응하신다.
그런데 보응의 이유가 중요하다.
'내 양 떼를 구해 주어서, 그들이 다시는 희생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편이 되신다.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만이 심판을 면한다.
둘째, 목자
(겔 34:23, 새번역) [23] 내가 그들 위에 목자를 세워 그들을 먹이도록 하겠다. 그 목자는 내 종 다윗이다. 그가 친히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목자의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양은 목자가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자가 '다윗'이다.
하나님은 다윗이 목자가 되고 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이 어떤 사람인가?
살인과 간음과 갖가지 죄를 짓고
많은 단점과 약함을 내보인 왕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왜 다시 소환하신 것일까?
사람 중에서 그나마 선한 목자에 가까운 모델이
다윗 외에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윗이 가진 매우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을 다시 소환하신 것 같다.
어떤 특징일까?
(겔 34:24, 새번역) 그 때에는 나 주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다.
다윗은 왕이지만 주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다윗에게 주님은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그저 왕일 뿐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 명확히 알았다.
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에 주 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았고
그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었음이 시편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단점이 없는 완벽한 것이 인간 목자의 조건이 될 수 없고
다윗처럼 자신의 위에 하나님의 계심을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인간 목자의 자격이다.
셋째, 참 목자
그렇게 참된 인간 목자인 다윗을 리더로 세우신 이유가 있다.
(겔 34:31, 새번역) 너희는 내 양 떼요, 내 목장의 양 떼다.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인간 목자를 통해서 참 목자이신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장의 하나님의 양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 인간 목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양들이 하나님의 목장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참 목자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
인간 목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못된 양들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을 요약하면,
못된 양들을 심판하시고
인간 목자를 세우시고 그를 통해
참 목자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3. 나는?
신학공부를 시작할 무렵에는
목사들의 타락이 너무 많이 보여서
참을 수가 없어서 욕이 늘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지나자 살진 양들을 보였다.
그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고
그들도 타락한 목사 만큼이나
교회를 망치고 기독교를 추락시키는 주범임을
깨닫게 되었다.
타락한 목사와 결탁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사의 편에 서서
그 목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공격적인 태도를 위하는 자들이다.
또는 타락한 목사에게 아부하면서
뒤에 숨어서 그 교회권력의 단맛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대형교회일수록 개혁이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목사를 분별하지 않아서
타락한 목사를 받아들이고
타락한 목사를 지지해 주어서
목사가 더 타락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한 사람들은
바로 그 교회의 교인들이다.
조금 개혁적이라고 하는 교인들은 더 문제다.
개혁적인 마인드를 가졌다고 하는 교인들이
올바르게 목회하려는 목사님이 계신
작은 교회로 가서는,
그 목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작은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고 단점만 지적하면서
목사가 소신대로 목회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
자신의 사명이 목사를 반대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대놓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들이 못된 목사 만나서
목사의 비리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어느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겠으나,
정도가 심해서 바르게 목회하려는 목사들이
죽기 직전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시대의 문제는 못된 목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못된 양들의 문제이기도 한다.
사실 총체적 난국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난 어떻게 목회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내가 아무리 바르게 목회를 하려 노력한다 해도
못된 양을 만나면 나는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실제로 못된 양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교인들이 거의 다 떠나버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나에게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내가 내린 결론은
교인도 좋은 목사 만나야 하지만
목사도 좋은 성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의 양들 잡아 먹는 못된 목사 되지 않기를,
그리고 말씀에 갈급한 좋은 성도 만나서
함께 참 목자되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길 기도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좋은 성도들을 만나서
행복하게 목회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목사라는 권위를 애써 내려놓고
(사실 목사가 권위를 내세운다는 게 우스운 일이지만)
성도들은 그런 나를 존중해주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씀 안에서 교제하고 있는 지금이
참으로 기적 같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나의 목회의 목표,
내가 목사가 된 이유는 명백하다.
내가 목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양이다.
양으로서 참 목자이신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만나면서
살아나고 회복된 양이다.
살아나고 회복되어가면서 옆에 있는 양들이 보였다.
말라 비틀어지고 있음에도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허덕이고 목 마르고 주려서 죽어가는 양들이 너무 많았다.
그 양들이 나처럼 살아나도록, 회복되도록
옆에서 돕고 싶었다.
그 길이 말씀 안에 있음을 분명히 알고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해석하고
그 말씀을 통해 스스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참 생명을 얻고 누리는 자발적인 신앙인을 세우는 것이
내가 목사가 된 이유다.
나는 사람이고, 성도들도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양이고 성도들도 양이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참 목자시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이
나는 사람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심을
알아가고 깨달아가고 누려간다는 사실이다.
나는 양일 뿐이고 참 목자는 하나님 뿐이심을
말씀을 통해 날마다 확인한다는 사실이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 속에서
이 분명한 정체성을 더 깊이 깨달아갈 뿐인데,
양인 내가 누리는 참 목자와의 교제가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임을 경험해왔다.
그리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풍성함을 또한 누린다.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은 풍성함이다.
(겔 34:26-27, 새번역) [26] 내가 그들과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려 주겠다. 내가 때를 따라 비를 내릴 것이니, 복된 소나기가 내릴 것이다. [27] 들의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은 그 소산을 내어 줄 것이다. 그들이 자기들의 땅에서 평안히 살 것이다. 그들이 멘 멍에의 나무를 내가 부러뜨리고, 그들을 노예로 삼은 사람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하여 주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이전보다 재정적으로 더 부자가 되었거나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런데 풍성하다.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시는 참 목자의 손길을
매일 아침 누려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양이고 성도들도 양이어서
참 목자가 너무나 필요하다.
부족한 사람임을 잘 알지만
나의 최선을 다해서 성도들이 참 목자이신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직접 만나도록 돕는 일이
나에게 가장 가치있고 복된 일이 되어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성도들과 내가 함께
우리는 사람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심을 알아가고,
그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인 우릴 사랑하시고 생명을 풍성히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려가는 매일이 되길 간절히 소원하는 아침이다.
윤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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