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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집이라고 불리는 집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7 추천 수 0 2023.11.07 0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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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집이라고 불리는 집
물건값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쓸 사람이 정하는 것이라는
월평 할머니의 경제학이 통하는 곳이기도 한데요
가격표 같은 것은 그저 참고 사항에 불과한 것이고요
낱돈 없는 날에는 구백 원짜리가 천 원짜리가 되고
천이백 원짜리가 천 원짜리가 되어서
그냥 천원집이라고 불리는 집인데요
한 십 년 묵은 외상값이 부조금이 되기도 하는
천원집이 있기는 있었는데요
-이대흠, <천원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중에서
또 하나의 언어를 안다는 것은 단지 언어 하나를 더 습득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외국어 실력이 조금 더 늘었다는 뜻일 수 없다. 새로운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정서와 정신, 문화와 역사 등을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특정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도 마찬가지다. 사투리는 방언(方言), 와어(訛語), 와언(訛言), 토어(土語), 토화(土話), 토음(土音) 등으로 불린다. ‘訛’가 ‘그릇될 와’인 것을 보면, 사투리는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사투리를 표준어로 바꾸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사투리에 녹아 있는 감정이나 정서는 사라지고 만다. 사투리에는 다른 말로는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느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대흠 시인의 시 속에는 구수한 남도 사투리가 가득하다. 사투리를 통해 전해지는 정서는 능청맞기 그지없어 절로 웃음이 난다. ‘때안쓰는 살살 쳐사 쓴당께는’이라는 시 제목을 ‘댄스는 살살 쳐야 한다’로 옮기면 구수한 맛은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시인의 미덕은 단지 사투리를 쓰는 데만 있지 않다. 사투리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 담긴 푸근한 정서를 얼마든지 담아낸다. ‘북에 백석이 있다면 남에는 이대흠이 있다’는 찬사가 허사는 아니다 싶다.
시인이 그리는 ‘천원집’은 풍경화에 가깝다. 동네 삼거리엔 구멍가게가 하나 있다. 간판도 없이 한 사십여 년 장사하는 집이다. 팔순인 할머니가 하루에 과자나 두어 봉지 파는 곳, 물건 사러 온 손님이 가격표 보고 알아서 돈 주고 가고, 외상값 같은 것도 알아서 머릿속에 적어 넣어야 하는 곳, 글 모르는 할머니와 글 모르는 손님이 만나면 물건값이 눈대중으로 매겨지는 집, 물건값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쓸 사람이 정하는 것이라는 할머니의 경제학이 통하는 곳, 가격표 같은 것은 그저 참고 사항에 불과해서 낱돈 없는 날에는 구백 원짜리가 천 원짜리가 되고 천이백 원짜리가 천 원짜리가 되는 집, 그래서 붙은 이름이 천원집이다.
‘천원집’은 이렇게 끝난다. ‘한 십 년 묵은 외상값이 부조금이 되기도 하는/ 천원집이 있기는 있었는데요’ 시인은 시제 하나로 할머니의 부재를 말한다. 십 년 묵은 외상값이 부조금이 되기도 한다니, 그리고 그런 집이 있기는 있었다니, 동네 사람들은 묵은 외상값을 부조금으로 드렸을 것이고, 할머니 떠난 뒤로 천원집은 더 이상 문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목사 아니랄까 그랬을까, ‘천원집’을 읽으며 내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은 천원집과 같은 교회는 없을까, 천원집과 같은 교회가 이 땅 곳곳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천원을 들고 가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독교사상/ 내가 친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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