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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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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인생학교’ 학생들
벽촌에서 ‘국민학교’를 다녔었다. 교과서마다 박정희 장군의 훈시와 그들 집안의 단란한 사진이 등장했지. 사실 학교보다 딸린 도서관이 탐났으나 자물쇠로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어. 도서관에선 곰팡이 냄새가 풀풀. 중학교는 이른바 ‘짐발이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다. 발이 페달에 닿지를 않았어. 십대 꼬맹이가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탄 격. 공부나 교과서보다 명작도서를 좋아했어. 곱씹느라 꿀 먹은 벙어리로 지냈다. 내가 말을 하는 걸 기억하는 동무들이 거의 없다. 대학은 졸업 학년도에 제적을 당하고 쫓겨났다. 이념 서클에 열중했지만 인생살이에 하등 도움이 되진 못했지. 어찌저찌 신학교에서 좋은 어른들 뵙고 목사가 되었는데, 가방끈이 짧다 보니 변방 거사. 남의 글을 몰래 베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따진 않았기에 다행한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시골교회에 있을 때 누가 목사 제의복을 장만해준다길래 극구 사양했다. 예배 때 입는 치렁치렁한 제의를 가져본 일 없고, 그러니 입어본 적도 없어. 박사 학위 제복도 따로 있다덩만. 몇 분 촌로분들 앉혀 놓고 그게 무슨 뜬금 패션인가 싶다. 양복도 그래. 자크르르 빼입고 만날 어려운 자리엔 예수님이 안 계신다. 흙투성이 기름 범벅칠한 손들을 뜨겁게 만져줄 손이면 되었지.
너무 많이 아는 척, 배운 척하면 밥맛이야. 예전엔 아파트 이름을 어렵게 지었는데, 요샌 다시 쉽게 짓는다더군. 왜냐면 시어머니가 영어를 좀 아는 시누이까지 대동하고 들이닥치기 때문.
가방끈이 짧아도 진솔하며 사랑이 많은 친구가 좋아라. 애써 돋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나는 사람. 진실하고 넉넉한 사람. 그런 친구랑 밥 먹고 싶은 송년의 밤이야. 한 해가 너울너울 저문다. 학생부군신위, ‘인생학교’ 졸업 때까진 평생을 두고 공부해야지. 사람에게서 배우고 책을 통해 배우면서 한 학년씩 올라가 보자.
임의진 목사·시인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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