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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시선-돈詩]각주(脚註)
각주(脚註)
헤겔은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방에서는 한 사람만이 자유로웠는데 지금도 그렇다
그리스 로마에서는 몇 사람이 자유로웠다
게르만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
마르크스는 어딘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시아적 봉건 사회에서는 한 사람만이 자유로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몇 사람이 자유롭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만인이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헤겔도 마르크스도
다음과 같이 각주 붙이는 것을 잊어버렸다
식민지 사회에서는
단 한 사람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김남주(1946∼1994)
인류의 역사는 재물과 재화, 즉 돈의 분배사였다. 돈은 늘 자유와 비례했다. 말 그대로 종잣돈(資本)을 가진 ‘몇 사람’이 자유로운 사회가 자본주의다. 이 모순을 간파한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돈주머니’라 불렀다. 만성 적자에 시달렸던 그의 가족들은 그가 자본에 대해서 쓰기보다 자본을 벌어오기를 바랐다. 그래서였을까. 마르크스가 빚에 허덕이며 썼던 <자본론>, 그러니까 만국의 노동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주의 이상은 지금 빛을 잃었다. 글로벌화된 후기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밀려나고 말았다.
1980년대의 우리 사회를 식민지 사회로 규정했던 시인은 말한다. 국가나 민족을 빼앗긴 사회에서는 단 한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고, 제국주의적인 거대독점자본에 지배되는 ‘신’식민지 사회 역시 단 한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그러니 이 시의 각주는 이렇게 달아야겠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 또한 지금껏 없었다고.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를 대신해 ‘자본은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라고.
정끝별 |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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