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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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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갈바람 방패연
할머니에게 애를 잠시라도 맡기면 말투가 아주 희한해진다. 가령 “너는 왜 그렇게 사고만 치니?” 하면 “크믄 안글겄재. 거랭이가 돼도 몸만 튼튼하믄 괜춤해.” 애가 노인 투로 대답해버린다. 화개장터 너머로 가면 “함무이 뭐하시노?” 엄마가 묻자 꼬맹이 대답, “디비 잔다”. 엄마가 애 말투에 화들짝 놀라가지고 “함무이 전화 바꽈도~” 하자 “깨움 지랄할낀데”. 기절초풍하게 만든다. 그래도 할머니 품에서 ‘정 굶주림’ 없이 자라겠기에 따숩고 다행한 일.
갈바람 불면 할아버지는 대를 쪄서 대살을 깎고, 할머니는 풀죽을 쑤어 연을 만든다. “에헤야 디야 바람 분다. 연을 날려보자. 에헤야 디야 잘도 난다. 저 하늘 높이 난다. 무지개 옷을 입고 저 하늘에 꼬리를 흔들며 모두 다 어울려서 친구 된다. 두둥실 춤을 춘다. 에헤야 디야 바람 분다. 연을 날려보자. 에헤야 디야 잘도 난다. 우리의 꿈을 싣고….” 요샌 창작동요제도 안 열리고, 애들이 귀방망이질 노래로 춤을 추거나 뜬금없이 노인들이나 즐기던 뽕짝을 부른다. 연이 날아다니던 동네 하늘, 높다란 전봇대가 들어와 시야를 가리고 미세먼지도 몰려와 논밭을 더듬어서 찾아간다. 할배가 먼저 산에 가 눕고, 할매도 뒤를 따르면 빈집에 쥐와 고양이가 ‘통일 살림’을 차린다. 방패연을 제아무리 만들어 방패를 삼아 봐도 세월을 이길 순 없지.
“오메오메 상다리가 기냥 뿌러져불겄소잉” 하면서 대가족이 먹던 자개상이 고물상에 버려져 있더라. 길쭉한 방패연을 닮은 자개상. 얻어와 수선해놓았다. 언제 친구들 오면 바지락국, 두부김치, 묵은지와 돌산 갓김치, 새우젓, 홍어회와 무침, 도토리묵, 굴전을 올려놓고 거한 밥을 나누고 싶다. 난전 좌판에 할매가 뭉툭한 손으로 다듬은 재료를 구해와 토종 밥상을 차리련다. 방패는 창을 이길 수 없다지만, 방패가 연이 되면 푸른 창공 위에서 자유롭겠지. 기억 속에 오래오래 평화롭겠지.
임의진 목사·시인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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