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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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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무담시
배트맨이 출몰하는 고담시 말고 여기는 무담시. ‘뭐땀시’와는 덩어리가 비슷하나 쪼개보면 다른 말. ‘괜히, 이유없이’의 전라도 방언이 ‘무담시’다. 오월 그날 전씨의 졸개 군인들이 총으로 쏴서 죽인 광주 초·중·고등학교 학생이 모두 16개 학교, 18명이라고 한다. 저수지에서 멱감다가 총에 맞은 중학생도 있고, 가장 어린 꼬맹이는 초등학교 4학년. 고무신이 벗겨지자 몸을 돌렸다가 저격병의 총에 맞았다. 어린 것인 줄 알면서 무담시 재미 삼아서 죽인 것이다.
사람이 드세고 표독하고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고분고분 ‘순딩이’로 살면 무담시 피해를 입게 되어 있다. 골목에서도 그렇고,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조그만 일에도 화를 버럭내고, 무담시 땍땍거리고, 시비 걸고, 얕잡아 보는 데엔 이유가 딱히 있지도 않다. 기어이 있다면 약자로 여겨졌기 때문.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저주를 퍼붓는 자들도 무담시 그러는데, 그러면서 우위에 선 듯 아래턱을 내밀며 거들먹거린다. 까발겨보면 제 처지와 주제와 꼴이 얼마나 창피할까. 창피 안 해요? 해도 가만히 있으면 죽게 되어 있다. 창이 날아오는데 안 피하면 창 맞아서 죽는 거지 뭐.
드뷔시를 좋아하는데 특히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얼마나 나른하고 야릇한가. 그러나 드뷔시를 공부해보면 알겠지만, 이 곡의 염세적인 우울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파리를 산책하면서 드뷔시가 기록한 음표들은 혁명의 도시에서 죽은 자들의 구음까지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반드시 슬픔을 껴안고 있다.
오호! 시방은 장미의 계절. 장미는 무담시 피어도 좋아라. 무담시 가시로 찔러도 미워할 수가 없다. 피가 흐르듯 붉은 장미꽃이 도처에 피어 반긴다. 무담시 서럽고, 무담시 갸륵한 삶이로다.
임의진 목사·시인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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