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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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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처갓집
수도원 맥주를 좋아하는데, 수도승들은 맥주 창고를 처갓집이라 불렀단다. 수도사와 수녀에게 배필이 있을 리 없고, 그만큼 맥주 창고에 가면 ‘성모, 주모, 시모, 장모’ 사랑을 입는다는 뜻이겠지. 그러고 보니 한때 ‘처갓집 양념통닭’이란 상호도 먹자골목마다 성황을 이루곤 했었어. 지질하고 못난 사내를 가리킬 때 ‘처가살이하는 사위’를 꼽았는데, 요샌 그도 재복이요 타고난 여복, 부인복이겠다. 여기에 스리 쿠션으로다가 장모복까지. 장모님의 지극한 사위 사랑으로 사는 자들을 보면 하냥 부러워. 마누라랑 싸우다 그만 장모와도 사이가 틀어지면 쬐끔 꼬시다.
마을의 집들은 죄다 누군가의 시댁이자 동시에 처갓집. 며느리는 달달 볶고, 딸은 애지중지하지만 시집을 보내고 나면 딸도 며느리 신세. 피장파장인 이 시집살이는 여인네들의 오랜 설움이었다. 요샌 그도 다 옛이야기. 열불이 난 며느리가 집을 나가면 손주들을 데려다가 길러야 해. 시골 동네에 보면 할머니 손에 자라는 아이들이 보인다.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 손에 자랄 때 태깔이 조금은 곱더라. 자세한 내막은 나도 잘 몰라.
러시아가 처갓집인 친구도 한 명 아는데, 침략전쟁을 일으킨 조국이 부끄러운 시절이겠다. 예전 사회주의 유머는 세계적으로 유명해. 한 모스크바 시민이 크레믈린 광장에서 “스탈린 동무는 바보 머저리다!”라고 피케팅을 했대. 체포되어 무려 11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당 서기장 모독죄 1년, 국가기밀 누설죄가 10년이었다고 한다. 공산당 유머는 웃으려면 좀 시간이 걸린다. 러시아 아가씨가 한국 남자에게 시집와선 그 쪼잔함에 실망들 한대. 보드카도 아니고 소주 따위에 혀가 꼬부라지고, 피식하면 춥다며 이불 속으로. 또 처갓집이 멀다며 안 가려 하는데 러시아에선 화장실만 가려도 반나절쯤 걸어간다지. 한국 남자들은 보기보다 연약해.
처갓집 덕분에 어깨를 펴고 사는 분들이 꽤 된다. 덕분에 정치에도 뛰어들고 말이야. ‘리스크’조차 ‘내조’다. 안티도 팬심. 처가의 도움 없이 연명하는 가난한 부부나 솔로도 좀 공정하게 사람답게 살아보자.
임의진 시인 경향신문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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