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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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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녹음 테이프
소싯적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갖고 있는데, 축구를 마치고 돌아와 헐레벌떡 숨찬 목소리로 뭐라 뭐라 경기평을 해대는 소리. 축구를 사랑하는 한국 사람인 나도 한때 매일 축구를 즐겼다. 축구 종주국 영국 사람 조지 오웰의 학창 시절도 축구 얘기로 자욱하더군. 그이의 산문 가운데 ‘즐거웠던 지난날들’이란 글이 있는데, “날마다 축구는 악몽 같았다. 싸늘하고 차가운 날씨, 질척거리는 물찬 운동장과 얼굴로 돌진해오던 흙 묻은 더러운 축구공, 무릎은 피가 날 지경으로 까지고 몸집이 큰 동무들에게 작은 내 발은 밟히기 일쑤였어.” 내 녹음 테이프엔 또 교회당 마루에 누워 찬송가를 부른달지 박화목 시인의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봄노래를 부르며 노는 동무들. 젊은 어머니의 가늘고 다정한 목소리도 담겨 있어. 휴대폰 녹음 파일과는 다른, 한 장의 카세트테이프. 금은보화보다 귀한 가보가 생길 거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녹음 테이프가 등장해. 아내가 녹음해준 대본 테이프를 차에 틀어놓고, 딴청 피우다가 한번씩 대사를 따라 외는 장면들. 영화를 보다가 재즈 가수 웅산의 음반을 틀어놓은 요즘 내 차를 떠올렸어. 옛노래 다시 부르기.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카세트테이프로 듣는다면 더 좋겠단 생각을 했어.
춘추전국시대 ‘장의’라는 사람은 말솜씨가 좋았대. 노상강도를 만났는데, 만신창이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물었어. “내 혀는 괜찮소?” “말을 하시는 걸 보니 괜찮은 것 같은뎁쇼.” “그럼 되었소. 전혀 문제없어.” 말이 주는 위로와 달콤함이 있지. 말에 속고 말에 눈물 나. 말로 천만원(천냥의 물가 상승) 빚을 갚지. 못난 치들은 뒤에서 딴소리, 앞에선 정나미 없는 막말을 내뱉는다. ‘말을 왜 저따구로 하나’ 싶을 때가 있어. 녹음기는 껐지만, 가슴마다 녹음된다.
임의진 목사·시인 2022.03.17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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