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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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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나부터
‘처서’가 지나서일까요, 바람에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해도 조금씩 짧아지고 있습니다. 머잖아 ‘추분’이 되면 밝음과 어둠이 다시 균형을 이루겠지요. 풀벌레의 울음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넓어지고 있습니다. ‘목욕한 물을 버릴 곳 없네 온통 풀벌레 소리’, 오니쓰라의 하이쿠가 절로 떠오릅니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영락없이 모스 부호처럼 들립니다. 부르고 대답하는 저 의미를 언제나 알아들을까, 마음이 익어가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올여름 집중 호우는 유난스러웠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보며 혼란스럽기도 했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말끔하고 화려해 보이는 도시의 이면에 반지하의 아픔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반지하라는 말은 무엇보다 음습하게 다가옵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반이었으니 햇빛이 넉넉한 곳에 살기 힘든 곰팡이들이 그곳을 거처로 삼았을 것이고, 낮은 곳으로 흐를 뿐 따로 길이 없는 물은 무심하게도 반지하의 대문을 막아 안타까운 희생이 이어져야 했습니다.
110년 만의 호우라니 방비에 한계가 있었겠다 싶으면서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폭우는 어쩌다 찾아온 자연 현상이 아니라, 그동안 여러 차례 경고를 해 온 기후 위기, 기후 재앙의 구체적인 모습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기후 위기와 기후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에 대한 자료는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오버슈트 데이’(Earth Overshoot Day)라고도 하는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은 국제 환경단체인 ‘세계 생태 발자국 네트워크(GFN)’가 해마다 계산을 해서 발표를 합니다.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은 인류의 생태자원 수요량(탄소발자국)이 그 해 지구가 재생할 수 있는 자원의 양(생태 용량)을 넘어서는 날을 말합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의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초과 일이 전 해보다 24일 늦춰진 8월 22일이었고, 지난해는 7월 29일, 올해는 7월 28일로 추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이 7월 28일이라는 것은, 지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생태 자원을 7월 28일에 다 썼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7월 28일 이후에 소비하는 생태 자원은 우리의 미래 세대가 쓸 것을 앞당겨 쓰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뜻입니다. ‘앞당겨’라는 말보다는 ‘빼앗아’라는 말이 더 실제적인 표현일 것 같습니다.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은 국가별로도 정해지는데, 올해 한국의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은 4월 1일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처럼 자원을 소비하는 삶을 살려면 최소한 지구가 4개 정도 필요하다는 의미이니,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달라지지 않으면 더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같은 생활방식을 이어간다면,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일 뿐입니다. 나 하나 달라진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나부터, 나라도 달라지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파국을 향해 치달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희철 목사 교차로신문 202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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