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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질병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7 추천 수 0 2023.03.01 08: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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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민영진 선생님과 김명현 사모님을 만났습니다. 춘천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형(한희준 목사) 내외와 함께 말이지요. 선생님 내외분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분당 한적한 곳에 있는 음식점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습니다. 마땅히 대접을 해야 할 일이었지만, 선생님께서 전해주시는 사랑과 격려를 큰 고마움으로 받았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차를 마시는 시간, 자연스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 내외분이 계신 곳에는 늘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사방 밝고 유쾌하고 유익한 웃음꽃이지요. 책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이 수전 손택 이야기를 하셨지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오래 전에 썼던 글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선생님 내외분이 전해주신 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깁니다. 두 분 모두 늘 강건하고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그 손이 거룩한 손이었어요
병철씨, 잘 다녀갔겠지요? 성탄절을 외국에서 함께 보낸 것은 두고두고 즐거운 기억이 될 듯 합니다. 사랑으로 먼 길을 걸어 만날 이를 만나는 것, 저는 성탄절의 의미를 그렇게 새깁니다. 지난 성탄절, 강원도 4개 마을의 농촌이장을 초청하여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것은 성탄의 참된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답니다.
일주일간 독일과 유럽의 농업현장을 둘러본 것이 작지만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울대로 기운 오늘의 한국농촌 상황을 뻔히 아는 터에 고작 일주일의 시간이 무슨 대수가 되겠습니까만, 그래도 농촌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믿음의 벗들이 아주 없지 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가 가졌던 소박한 바람이었습니다.
함께 했던 시간 중에 그 어떤 시간이, 함께 나눈 얘기 중에 그 어떤 얘기가, 같이 둘러보았던 것 중에 그 어떤 것이 다시 돌아간 마을에 작은 희망의 씨앗 혹은 희망을 싹틔우는 밑거름으로 남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프랑크푸르트공항을 빠져나갈 때 남모르게 닦았던 네 분의 눈물이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우리도 돌아서서 눈물을 닦았지요. “농촌의 깜박불을 아주 끄지 마소서!”, 함께 한 시간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었고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어제 저녁 저는 교우 내외와 식사를 같이 했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올해쯤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 두 분은 가능하면 한국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농촌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관심을 갖지도 못했는데, 이번 성탄절 행사를 통해 농촌 지도자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며 새삼 농촌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고맙게 들리던지요. 이런 일들이 우리 마음속에 뿌려지는 희망의 씨앗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부, 농군, 농사꾼, 곡인, 농토한, 농투성이.... 농사를 짓는 이들을 부르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심정적으로 농부가 자기 자신을 이르는 말은 농투성이 쪽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농부 스스로만이 아니어서 다른 이들이 농사짓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 한 번 대접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땅을 일궈 먹을 것을 키워내는 사람, 손해를 보더라도 하늘이 주신 땅을 놀리는 것은 ‘죄 받을 일’(죄와 벌을 따로 구별하지 않는 것이 놀랍습니다)이라며 몸으로 쟁기를 삼아서라도 씨앗을 뿌리는 사람, 그러기에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성직자가 아니라 틀림없이 농부일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소중히 고맙게 여기는 이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손에 피를 묻히고 남을 속이더라도 떵떵거리며 사는 이를 부러워할망정 바보처럼 묵묵히 땀을 흘리는 농부를 무시하는 세상이니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싶습니다.
병철씨, 요새 저는 ‘은유로서의 질병’이라는 책을 읽었답니다. 흙이 좋아 병철씨가 흙을 일구듯이 책 좋아하는 제가 책 한 권 읽은 것이지요. 제목을 듣은 병철씨가 손사래를 칠지 몰라도 잠깐 책 이야기를 할까 하는데, 들어볼래요?
이 책을 쓴 수전 손택은 자신을 찾아온 암을 두 번씩이나 극복을 해낸 사람입니다. 한 번도 쉽지 않은 터에 두 번씩이나 암을 이겨내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고 이 책이 어떻게 암을 이겨냈는지를 기록한 투병기는 아니랍니다.
자신이 병을 겪었던 수잔 손택은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뭔가 추하고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함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질병은 단지 질병으로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인데, 사람들은 질병을 그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아주 위험하고 사악한 것으로 만들어 버려 상황을 지나치게 왜곡하며, 환자들을 고립시키거나 환자들에게 죄인의 낙인을 찍는데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병은 늘 병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질병 속에는 그 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병에 걸리면 병 때문에도 고통을 겪지만 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어릴 적 어렵지 않게 보았던 간질 증세는 우리를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했지요.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갑자기 몸이 마비가 되며 입에 거품을 물고 교실 바닥에 쓰러지면 무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친 거 아닌가, 귀신들린 거 아닌가, 간질로 쓰러진 친구를 공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우리 마음속에는 그런 생각도 있었으니까요.
나병은 더했지요. 나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아이들의 간을 빼먹는다 하여 세상 그 어떤 무서운 것보다도 더 무섭고 무조건 피해야 할 존재로 알았으니까요. 가을 산에 오를 때면 혹시 만나게 될지도 모를 나환자를 대비해 호주머니 속에 모래를 넣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성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나병에 걸리면 누구든지 성 밖으로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본인이든 부모나 조상이든 뭔가 큰 죄를 저질러 하늘로부터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나환자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차라리 죽음보다 못한 잊혀지고 버려진 삶을 살았을 뿐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혹시 마을길을 지날 일이 있을 때는 마을 어귀에 서서 ‘나는 부정하다’고 큰 소리로 외쳐야 했고, 성한 사람들이 다 비켜버린 길을 자기 그림자 하나 끌고 지나가야만 했으니까요.
수전 손택은 여러 가지 질병 중에서 특히 결핵과 암, 에이즈라는 세 가지 질병을 강조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질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뭔가 불쾌감과 반감을 일으키는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결핵은 그래도 나았습니다. 비록 결핵이라는 말이 사전에서는 ‘소모’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기는 했으나, 결핵은 뭔가 격렬한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여 시인이나 소설가에게 어울리는 병으로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예민한 감수성이나 낭만적 고뇌를 가진 이들에게 찾아오는 질병으로 알아, 결핵의 증세로 나타나는 창백한 얼굴이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으니까요.
오늘날 널리 퍼져있는 마른 체형을 숭배하는 생각의 근원을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있었던 결핵의 낭만화에서 찾고 있는 지적은 놀랍고도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이 시대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건강한 아름다움보다는 병적인 아름다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흔히 ‘암적인 존재’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암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굉장히 부정적입니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탓도 크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가져왔던 생각 중에는 환자 자신이 질병을 만든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격이나 기질이 질병을 만든다는 것이지요.
결핵이 자신의 감정을 광기에 가깝게 표출하는 병이라면 암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생기는 병으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심리적으로 좌절감을 겪거나 야망이 꺾이거나 본능을 억눌러서 생긴 병이 암이라 생각을 했던 것이었죠. 어느새 암은 치명적인 질병을 넘어 자신의 육체가 저지른 부당한 배반이라는 수치스러운 질병이 되어버리고 말았고, 암이 상징하는 것은 ‘재앙’과 ‘악’과 ‘부조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암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질병의 책임을 환자에게 덮어씌우는 것으로 자신의 병에 대해 의학적인 치료가 얼마만큼 가능한지를 알아내려는 환자의 노력을 방해할 뿐 아니라 최선의 치료를 회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암은 환부 주변의 건강한 부위까지를 도려내야 하는 외과수술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반드시 제거해야 할 사악한 대상이 되어 정치적으로는 폭력을 선동하거나 숙명론을 조장하는데 사용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태인 집단학살과 관련 나치가 즐겨 사용했던 말이 바로 암이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질병이 될 수 있는 어떤 의학적 조건을 나타낼 뿐 단일질병은 아니었던 에이즈는 어느새 우리 시대의 치명적인 병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애써 에이즈의 진원지로 아프리카를 지목하고 있지만 아직도 밝혀진 것보다는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데(세균전의 확산이라는 음모론까지 있더군요), 이 질병으로 자유로운 나라가 따로 없을 만큼 에이즈는 이제 인류의 문제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에이즈라는 말은 침략, 오염, 타락, 잠복, 증식의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모든 이들에게 트로이의 목마처럼 자리 잡은 에이즈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이즈는 많은 경우 성적인 방종의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도덕적 파산에 대한 신의 심판이자 자연의 복수라는 것이지요.
병을 앓아본 이는 익히 경험하는 일이지만 질병이 가져오는 가장 큰 불행은 고독입니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의사조차도 찾아오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환자에 대한 사회적인 추방과 다를 것이 없지요. 에이즈 환자는 죽음을 예상할 수밖에 없는 병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하고 있다는 고통을 더 크게 겪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에이즈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의학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타적인 행동의 본보기였던 자신의 피를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이제 위험한 일로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피를 저장해두는 것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는 가장 안전한 방편으로 여기게 되었고, 심지어는 찻잔을 돌리거나 성만찬을 위한 포도주잔을 돌리는 것조차 위험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기심은 ‘의학적 신중함이라는 또 다른 노획물’을 얻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던 ‘노망’이 어느새 ‘치매’라는 병병으로 노인들껜 세상 어떤 질병보다도 무서운 병이 되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피해야 할 치명적인 일로 여겨지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드려야 할 마땅한 도리를 감금하고 격리시켜야 할 질병으로 만들어 심정적인 도피구를 찾아낸 것 아닐까 싶습니다.
어렵고 따분한 이야기가 길어졌지요. 목사들은 원래 쉽고 단순한 얘기를 복잡하게 만들어 길게 하는 버릇이 있답니다. 병철씨, 농부를 이르는 말 중에는 여름지기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열매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아름답고 훌륭한 말이지요. 그런데 현실은 농부를 ‘무지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농부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이 그렇게 낙인을 찍기도 합니다. 이 또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무섭고도 차가운 은유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병철씨가 어색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제까지 만난 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병철씨 손이었습니다. 군살이 박히고 계곡처럼 패인, 굴참나무 껍데기와 다를 것이 없는 손이었지요. 단강교회 여선교회 회장을 맡았던 준이 할머니께서 시내에서 모이는 회장 모임에 참석하기를 꺼려하셔서 이유를 물었을 때, 준이 할머니가 조심스레 당신의 손을 내민 적이 있습니다. 흙물 풀물 가득 밴 손이었지요. 전 그 손을 마주잡고 말했답니다.
“권사님, 이 손이 아름다운 손이잖아요. 이 손이 아름다운 손이에요.”
프랑크푸르트를 다녀가며 무슨 일이 있어도 농촌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병철씨, 저는 지금 흙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병철씨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 안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농사짓는 사람들을 뭐라 하든 말든 하늘과 가장 가까운 그 일을 묵묵히 감당해주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준이 할머니께 드렸던 그 말을 병철씨에게도 전하고 싶네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초라하고 흉해 보일지 몰라도, 온통 군살이 박히고 갈라지고 패인, 겨울 동안만 잠시 풀물 흙물이 사라지는 농부의 손, 병철씨, 그 손이 세상 가장 거룩한 손이었어요.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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