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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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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미안합니다라는 한 마디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강원도 단강이라는 작고 외진 마을에서 목회를 할 때였으니까요. 단강은 하루에 버스가 몇 대 들어오지 않는 오지 마을이었습니다. 덕분에 손님들이 찾아오면 작은 집에서 함께 잠을 자는 일이 흔했습니다. 자동차 역시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던지라 저녁 버스가 끊기고 나면 다음 버스는 다음 날 아침에야 들어왔으니까요.
그날도 그랬습니다.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단강 마을을 즐겨 찾았던 청년이 결혼을 하여 인사차 찾아왔습니다. 자기 마음에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단강마을을 결혼을 한 사람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인연은 따로 있는 것인가 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평생을 약속하는 만남이 주어지기도 하니까요.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공부를 더 하려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 것이었습니다.
마침 두 사람이 단강을 찾은 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수요일은 저녁예배가 있는 날이었고, 하루 일을 마친 교우들이 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들에서 일하느라 검게 그을린 얼굴의 사람들, 그럴수록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는 더욱 소중했습니다.
교회 소식을 알리는 시간에 두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교우들은 따뜻한 박수로 두 사람을 맞았습니다. 그 순간 문득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교우 중에는 나이가 지긋한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권사님이 일본어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였습니다.
권사님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결혼을 축하한다고, 단강마을을 찾아온 것을 환영한다고,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는 말을 일본어로 이야기해 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권사님이 받아주었습니다.
유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권사님은 별 어려움 없이 부탁한 내용을 일본어로 전했습니다. 막 결혼을 한 상태, 신부에게 아직 우리말은 서툴겠다 싶어서였지요. 인사말을 들은 신부는 “고맙습니다.”라고 우리말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사택에서 차를 마실 때였습니다. 단강을 찾은 소감을 나누던 중 예배 시간에 있었던 인사말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따뜻한 배려라 여겨져 참 고마웠다고 청년이 말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신부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인사를 해주신 분처럼 나이 많으신 어른이 일본 말로 인사를 할 때 무척 죄송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연배의 어른이 일본어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며 일본이 한국을 점령했던 사실을 떠올렸던 것이었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그 한마디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잘 아는 청년이 참으로 예의 바르고 생각이 깊은 사람과 결혼을 했다는 마음도 들었고요. 오늘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없이 화해로 가는 길은 불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희철 목사 (교차로 2023.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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