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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매기는 우는고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6 추천 수 0 2023.04.19 21: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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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목매기는 우는고

 

나이와 상관없이 동심을 지켜가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가까운 지인 중에 그런 분이 있습니다. 나이는 한창 할머니인데도 말하는 것이나 웃는 것이나 부끄러움을 타는 것이나, 영락없는 소녀입니다. 그렇다고 생각까지 무디어진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퍼렇게 빛이 납니다. 나라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두고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 그분이 시조 한 편을 보내왔습니다. 당신 기억의 창고에 묻혀 있던 시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교과서 제1과에 실렸다는 것과 그것을 쓴 이의 이름 ‘정 훈’까지 기억을 하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기억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시조의 내용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내게는 낯선 글이어서 확인을 해보니 글자 하나 틀리지를 않았습니다. “노랑 장다리 밭에 나비 호호 날고/ 초록 보리밭 골에 바람 흘러가고/ 자운영 붉은 논둑에 목매기는 우는고.”

낮에 동네 한 바퀴 돌아오는데 까맣게 기억 창고에 들어있던 그 짧은 시조가 생각이 났다는 것을 보면 사방 가득한 봄기운이 시조를 떠올리게 했지 싶습니다. 시조를 떠올리며 함께 떠올리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시의 제목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 컴퓨터든 핸드폰이든 얼마든지 검색을 하면 금방 확인을 할 수가 있을 텐데 제목을 모른다 하신 것을 보면, 떠올린 모든 것을 기억에 의존했음을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 시조의 제목이 ‘춘일’(春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좋은 시를 소개받은 보답 삼아 시의 제목을 알려드렸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소정(素汀)이라는 호를 가진 정 훈은 1911년 논산 양촌에서 태어나 1938년 동인지 <자오선>에 ‘6월공’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을 했습니다. 해방 후 대전에서 ‘호서중학’을 세웠고, ‘향토시가회’를 조직하고 ‘호서문학회’를 창립하여 지역 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대표 시집으로는 1949년에 발표한 <머들령>이 있는데, 머들령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금산으로 가는 국도의 터널 이름으로 남아 있다고 하니, 정 훈이라는 시인과 <머들령>이라는 시집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겠다 싶습니다.

‘춘일’(春日)을 다시 한번 읽으니 대뜸 봄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노란 꽃을 피운 장다리 밭에는 나비들이 훨훨 날아다닙니다. 무나 배추 따위의 꽃줄기를 말하는 ‘장다리’라는 말은 참으로 오랜만에 대하는 반가운 말이었습니다. 어릴 적엔 키가 큰 아이들을 보면 ‘장다리처럼 키가 크다’고 말하고는 했었지요. ‘초록 보리밭 골에 바람 흘러가고’는 글이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처럼 다가옵니다. 초록 보리밭 골을 지나는 바람은, 본 사람만 아는 바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시를 대하며 재미있었던 것은 ‘자운영 붉은 논둑에 목매기는 우는고’라는 구절이었습니다. 목매기를 두고 지인은 어떤 새를 떠올렸다고 했지만, ‘아직 코뚜레를 꿰지 않고 목에 고삐를 맨 송아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저는 좋은 시를 만났고, 지인은 목매기를 알았으니 이 봄 서로 좋은 선물을 나눈 셈이겠지요. 어디선가 목매기의 울음소리 들리면 좋겠다 싶은 아름다운 봄날이 한창입니다. 

 

<교차로>202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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