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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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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11. 군종병
대학 후배라며, 군종병으로 일하고 있다는 한 군인이 전화를 했다. 학교를 다닐 때 단강마을 얘기가 담긴 책을 읽은 적이 있다는 얘기와 함께, 초소 방문을 하는데 필요하니 선교헌금을 보내 주었음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얘기를 들으며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런 말을 하는 그의 태도에서 조심스러움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군 생활을 군종병으로 지냈기에 군종병의 어려움을 잘 안다. 차를 가지고 초소 방문을 하던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어려움이야 잘 알지만 그는 무슨 맘으로 내게 그런 전화를 했을까.
선배니 당연히 그런 일쯤은 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었을까. 편하게 기대고 싶은 선배에게 편하게 어려움을 토로한 걸까. 그는 내가 언제라도 맘만 먹으면 그런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처지라고 생각한 걸까.
그 어려운 군종 생활을 하며 차 배달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주변 마을을 자루를 들고 돌아다니며 탱자를 따 모으던 일이 떠올랐다.
찻감을 만들어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결명자를 교회 앞에 심어 보기도 했다. 마당 가득 널어 말린 탱자가 훈련을 나간 사이 내린 비를 맞고 썩어 그냥 다 내버려야 했던 일도 있었다.
궁색하지만 그런대로 방법을 찾으며 3년을 그렇게 지냈다. 한 가지 분명했던 건 궁색할지라도 누군가에게 도와달라 말한 적은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니 도와주시오, 당연한 듯 말하는 부당함, 그것이야말로 늘 조심해야 할 일임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확인하곤 했다.
사실 단강교회에서는 매달 5만원씩을 군선교헌금으로 보내고 있다. 농촌교회라고 받는데만 익숙해져선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늘 있다. 지난해엔 군부대 방문을 두 번하기도 했다. 서너말씩 떡을 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넉넉해서 하는 것만은 아닌 일, 그런데 걸려온 후배의 전화는 웬지 당당하게 느껴졌고 쉽지 않았다.
며칠 전엔 소포를 한 점 받았다. 제법 묵직한 소포였다. 포항에서 보내온 소모였는데 끌러보니 기름이었다. 참기름 세 병이 담겨 있었다. 참기름병 사이로 인쇄물이 있어 보니, 교회를 지으려 건축비를 미련하기 위해 기름을 보내니 7만원 이상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공업단지가 들어와 교회가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교회를 새로 지을 건축비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은 교단도 다른 교단이었다. 놀라워라, 용감도 하고 믿음도 좋아라. 형편이 이러하니 기름 좀 팔아줄 수 있겠느냐는 의중을 묻지도 않고 덜컥 기름을 보내다니 ‘발전 가능성 있는 교회’를 짓기 위해 발전과는 거리가 먼 농촌교회로 보낼 생각을 하다니.
속이 좁고 믿음이 없어 그러는진 몰라도 아무래도 그런 처사는 ‘무례함’ 아닐까.
하는 일이 옳다면 하는, 방법도 옳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한 후배의 전화와 소포로 날아온 참기름. 무어라,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건지.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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