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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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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망할 놈의 카피
이따금씩 받는 질문 중에는 목사가 아니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크게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목회의 길 외에 따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어 오히려 대답이 가벼울 수 있습니다. 그 중 마음이 가는 한 가지 일이 카피라이터입니다. 광고의 문안을 작성하는 사람이지요. 짧은 문장 안에 시대의 흐름이나 가치, 사람들의 정서와 욕구를 담아내는 일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느슨하거나 과장되거나 애매하거나 상투적인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터이고요.
단번에 정곡을 찌르는 통찰력이 필요한 일, 일본의 단시(短詩)인 하이쿠보다도 훨씬 더 단단한 응집력을 필요로 하겠다 싶습니다. 광고를 하는 회사가 지향하는 바를 담아야 하니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할 테고, 심지어는 단어가 주는 어감조차도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형용사와 명사 혹은 명사와 명사와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이나 여음도 놓쳐서는 안 되겠다 싶으니, 감히 쉽게 꿈꿀 일은 아니다 싶습니다.
방송을 듣거나 보다가 마음에 와 닿는 광고 문구를 만나면 되새김질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저런 문구를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거리에 적힌 멋진 광고를 보면 역시 감탄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며칠 전에 들은 이야기는 차라리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나을 뻔 했는지도 모릅니다. 우연히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떠올랐던 말은 “샤데”(Schade)였으니까요. 독일에서 몇 년 산 덕분에 마음에 남은 말 중 하나가 그 말인데, 유감을 뜻하는 말로서 저는 그 말을 “제기랄”의 의미로 기억합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서울 강남에 2027년 준공 예정인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는데, 그 아파트의 분양가는 자그마치 100억 이상으로 유명 건축가가 건축에 참여를 했다고 합니다. 아파트 한 채의 값이 100억이 넘는다니, 그런 아파트를 딱 73채만 짓는다니, 입이 떡 벌어질 일이다 싶은데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광고 문구는 더욱 놀라웠습니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였으니까요.
광고는 단지 한 사람의 머리에서만 대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광고 문구 하나를 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조율을 하고, 그 모든 단계를 거친 뒤 어렵게 최종적으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위의 광고 문구도 필시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모든 과정을 거친 뒤에 과정에 참여한 모든 이들과 경영진들이 찾아낸 문구가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 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였던 것이지요.
‘피둥피둥 회충떼처럼 불어나며
이리저리 힘차게 회오리치는
온몸이 혓바닥뿐인 벌건 욕망들’
시인 최승호의 ‘몸’이 떠오릅니다.
능력도 없지만 카피라이터가 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저 망할 놈의 카피를 생각하면 말이지요.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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