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어둠이 내리면 사라질 일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32 추천 수 0 2023.07.26 22:32:09
.........

3b2db892deb215454cf3aeee5fbd953f.jpg[한희철 목사] 어둠이 내리면 사라질 일

 

시간이 주어질 때 정릉천을 걷는 것은 즐거운 습관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섭니다. 자동차 두 대가 지나가려면 서로 조심을 해야 하는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다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면 정릉천 입구를 만납니다. 

 

북한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정릉천이 동네 한복판을 흘러가는 것은 자연이 정릉에 주는 큰 선물입니다. 그 물이 흘러감으로 적어도 이곳이 메마른 땅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릉천을 걸으며 자연의 선물을 즐깁니다. 혼자서 걷는 이들도 있지만, 두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중년부부의 모습도 드물지 않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그날도 평일과 같이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는데, 저만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정릉천을 자주 걷다 보니 어떤 모습이 어떤 상황인지를 대개는 짐작을 합니다. <천변풍경>이 있는 다리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경우는 그곳에서 한 가수가 노래를 할 때입니다. 통기타로 부르는 노래가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립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개의 경우는 오리 가족을 만났을 때입니다. 정릉천에서 새끼를 깐 어미가 새끼들을 데리고 물 위를 헤엄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병아리만 한 새끼들이 어찌 그리 헤엄을 잘 치는지, 행여나 어미에게서 멀어질까 바지런히 어미를 따라가는 모습 속에는 가족의 의미가 충분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오리 가족을 보는 일이라면 당연히 시선이 정릉천을 향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오리궁뎅이>라는 식당을 지나 다음 동네로 들어서는 좁다란 길목에 모인 사람들은 정릉천을 등지고 있었습니다. 

 

전혀 짐작이 되질 않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자동차 두 대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차가 멈춰 선 곳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로, 두 대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곳입니다. 50여 미터 이어지는 중간쯤에서 마주친 것인데, 운전자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길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서로에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함부로 어느 쪽 편을 들 수는 없는 일,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서 그 일이 어떻게 마무리가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마을버스 한 대가 멈춰 섰고, 화가 난 버스기사가 연신 경적을 울렸지만 자동차 두 대는 여전히 꿈쩍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상황은 자존심 싸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러서는 것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잘못과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만 셈이었습니다. 

 

더 지켜보는 대신 걸음을 옮겼습니다. 반환점을 돌아 내려오는 길, 어느새 길엔 땅거미가 깔려 들었습니다. 좀 전에 지나왔던 길을 앞두었을 때, 상황이 궁금했습니다. 차량 행렬이 더 길게 늘어선 것은 아닐까 싶었지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누가 양보를 한 것인지 길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사라지고 말 일을 두고 아웅다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어둠이 내린 텅 빈 길이 나직하게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교차로> 2023.7.26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517 이현주 당신의 평화를 마지막 선물로 주심(요14:27-31) 이현주 2023-04-21 32
11516 한희철 사탕수수 노트 한희철 2023-06-14 32
» 한희철 어둠이 내리면 사라질 일 한희철 2023-07-26 32
11514 이현주 에베소 소동(행19:21-41) 이현주 2023-08-16 32
11513 한희철 유쾌하게 지기 한희철 2023-11-16 32
11512 한희철 3087. 말 한마디 한희철 2022-04-07 32
11511 이현주 바울에게 보이신 환상(고후12:1-10) 이현주 2024-01-04 32
11510 이현주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엡2:1-10) 이현주 2024-01-29 32
11509 임의진 [시골편지] 까치발 아이 file 임의진 2024-02-08 32
11508 필로칼리아 에바그리오스(Evagrios)의 <기도153>1.네 가지 덕 file [1] 에바그리오스 2024-11-19 32
11507 이현주 이현주 2017-02-14 33
11506 이현주 유리는 맑아서 file 이현주 2017-03-15 33
11505 이현주 오늘 file 이현주 2017-04-21 33
11504 한희철 낮달 한희철 2017-05-17 33
11503 이현주 돼지가 아니라 file 이현주 2017-05-29 33
11502 이현주 어쩌면 그렇게도 이현주 2017-07-05 33
11501 김남준 직업 선택 김남준 2017-09-27 33
11500 김남준 비밀의 영광의 경륜 김남준 2017-10-24 33
11499 김남준 용서의 탁월한 은혜 김남준 2018-01-20 33
11498 김남준 싸움에서의 승리 김남준 2018-01-27 33
11497 김남준 생존과 승리 김남준 2018-02-22 33
11496 김남준 방어 김남준 2018-02-27 33
11495 김남준 좋은 부모를 만났습니까? 김남준 2018-05-28 33
11494 임의진 [시골편지]육식에서 채식으로 file [1] 임의진 목사 2018-11-28 33
11493 김남준 선:창조 목적에 부합하는 상태 김남준 2018-12-04 33
11492 김남준 누가 선을 경험하는가 김남준 2018-12-10 33
11491 임의진 [시골편지] 오거리파 고양이 file 임의진 2019-02-13 33
11490 김남준 무엇을 대속하셨나-반역과 죄 김남준 2019-05-13 33
11489 임의진 [시골편지] 까막눈 할매 file 임의진 2019-07-30 33
11488 김남준 교리를 알고자 애쓰고 있습니까? 김남준 2019-08-20 33
11487 김남준 성례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의 표지입니다 김남준 2019-12-19 33
11486 김남준 설교와 성례는 분리되어서는 안됩니다 김남준 2019-12-19 33
11485 김남준 우리들이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가지는 교제는 김남준 2020-02-10 33
11484 김남준 성찬의 정신을 투영하는 삶을 구현해 나갈 때 김남준 2020-02-10 33
11483 임의진 [시골편지] 짜라빠빠 file 임의진 2020-03-18 33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