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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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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과 경험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기록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죽음 직전의 마지막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고, 긴 감옥 생활을 기록으로 버티기도 하고, 심지어는 모든 희망을 모두 버리는 것이 그나마 자신을 버티게 하는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기록을 남깁니다.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은 모두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굴뚝 속의 흰 연기가 되는 것밖에는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그들은 그곳에서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책의 서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따뜻한 음식과 다정한 얼굴을 만나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라 이것이 인간인지. 진흙탕 속에서 고되게 노동하며, 평화를 알지 못하고, 빵 반쪽을 위해 싸우고, 예 아니오라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죽어가는 이가. 생각해보라 이것이 여자인지.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이름도 없이, 기억할 힘도 없이, 두 눈은 텅 비고 한겨울 개구리처럼 자궁이 차디찬 이가.’ 모든 악마적인 비인간화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에서도 그는 그 상황을 기록으로 남겼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기>라는 책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불경죄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은 한나라 관리 사마천은 궁형을 선택하여 목숨을 건졌고, 마침내 중국 2천 년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궁형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궁형은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주로 남자의 음경과 고환 둘 다 제거하는 형태를 택했다고 합니다. 궁형은 ‘부형’이라고도 하는데 절단한 환부에서 오랫동안 살이 썩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냄새로 인해 사람들이 다 멀리했다고 합니다. 궁형을 당한 자는 감염으로 인해 생존 확률이 10-20% 정도였다고 하는데, 살아난다 해도 잘린 음경으로 인해 소변을 앉아서 봐야 하고 평상시 오줌을 지리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런 치욕을 알면서도 궁형을 택한 것은 도서를 관리하고 천문을 관찰하며 사료를 편찬하는 태사로서 목숨 값을 치를 돈이 없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기>를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마천은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프게 돌아보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일이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조선 초 민인생이라는 사관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태종은 편전 사관인 민인생이 들어오자 “편전은 내가 편안히 쉬는 곳이니 사관은 들어오지 마라”며 짜증을 냈습니다. 그 때 민인생은 “임금과 대신이 정사를 돌보는 편전에 사관의 출입을 금하면 어찌하느냐?” 하며 서릿발 같은 한마디를 했습니다. “사관은 곧게 써야 합니다. 제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시절 때문일까요, “제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천둥소리처럼 들립니다. 무릇 모든 펜을 잡은 이는 한 사관의 말을 하늘 음성으로 새겨야 할 일입니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202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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