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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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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84. 글 배우기
이야기를 부탁받아 며칠간 충청북도에 있는 한 시골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봉양읍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는 구곡리라는 동네였습니다.
둘째날 아침. 한 아주머니의 초대를 받아 그 집으로 식사를 하러가게 되었습니다.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는데 차린 찬도 그랬습니다. 부담 없이 있는 찬으로 대접해 주시는 그 마음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던 중 아주머니는 공부를 못한 것이 크게 한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자가 공부를 하여 글씨를 배우면 연애편지나 쓴다고 부모님께서는 아예 학교 근처에도 보내지를 않았다는 얘기였습니다. 환갑이 다 되신 분이니 그 당시엔 그런 일이 흔했겠지요. 남들이 학교 가는 그 나이에 밥짓고 빨래하고 집안일을 거들며 보냈는데, 학교 가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답니다.
‘이 글자가 무슨 글자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면 그 글자를 잘 외워두고, 학교에 나가는 동 무가 무슨 글자를 읽으면 그 모양을 잘 기억해두고 그런 식으로 아주머니는 글을 익혀나갔습니다.
그런 덕에 겨우 까막눈은 면했다니 그 노력이 어디 여간이었겠습니까? 그렇게 글자를 읽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아주머니에겐 또 다른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글씨를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몇 번 ‘국문을 뚫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받침이 제대로 안 되는 게 영 자신이 없어 그만뒀다는 얘기를 긴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던 아주머니가 친정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 눈가에 얼핏 눈물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친정엔 노부모님이 살고 계신데, 지금도 집에 가면 부모님께서는 호주머니에 모아뒀던 꾸깃꾸깃한 돈을 자신에게 건네준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에 그토록 배우고 싶어하던 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미안하고 원이 된 마음을 그렇게라도 달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친정 부모님 이야기를 듣고서는 아주머니에게 다시 용기를 내어 글을 배우실 것을 권해드렸습니다. 일흔살에 손주에게 글을 배워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책을 쓴 홍영녀 할머니 이야기도 들려드렸습니다.
곧 농사일이 시작되면 정신없이 일에 묻혀 살아야 할 분에게 굳이 글을 권하는 일이 나 또한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집스레 권해드렸던 것은 친정 부모님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 고맙습니다. 저를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뒤늦게라도 글씨를 배워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 또박또박 정성스러운 글씨로 부모님께 편지를 드린다면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기쁘실까. 평생의 응어리로 가슴에 남아 있던 부모님의 아픔을 그렇게 덜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 내게도 간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얘기마을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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