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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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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04. 도로에 차들이
초록빛 물감을 손에 가득 묻힌 누군가가 날마다 산을 쓰다듬는 듯 산엔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 기운이 넘실댑니다. 물결 번지듯 산에서 산으로 퍼져가는 녹색 물결 사이로 산벚꽃이 소리 없이 피었다가 조용히 지고 있습니다.
모판을 만들고, 잎담배를 심고, 논과 밭을 갈고 거름을 내고, 일철을 맞은 농촌은 하루해가 짧게 여겨질 만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농사엔 때가 있는 법이어서 미룰 수 없는 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이도 억지로 몸을 끌고 나와 바쁜 이웃의 일손을 돕느라 바쁜 손을 놀리는 것은 미룰 수 없는 일들 때문입니다.
이런 일엔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학교가 파하는 대로 부모님들 일하는 들판으로 달려와 함께 일을 거들곤 합 니다. 모판 하나만 들어 주어도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일전에 일이 있어 충청북도 생극이라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안스럽게 살아가는 한 젊은이를 돕기 위해 몇몇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 젊은이의 친척을 찾아 나선 길이었습니다. 그런 일로 먼길을 찾아 왔노라고 친척되는 분은 우리를 무척이나 반갑고 고맙게 맞아주었습니다.
볕 좋은 마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였습니다. 친척되는 분이 마주 보이는 산 아랫쪽으로 난 도로를 가리키며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가만 보문 저 도로에 차 댕기는 것이 봄철하고 가을철하고 달라유. 3월부터 7-8월까진 차들이 뜸한데 가을이 되면서부터는 차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유. 왜 그러는지 아세유?”
수안보로 가는 길목이니 날이 선선할 때 온천욕을 즐기려 하기 때문일까 짐작이 됐을 뿐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도시 나가 사는 자식새끼들이 일철에 오문 일 시킬까 봐 봄엔 아예 안 내려오는 거여유. 그땐 지들끼리 놀러 가느라구 길이 한가한 거지유. 가을쯤 되서 추수를 하게되문 그땐 추수한 곡식 얻어 갈려구 뻔질나게 내려와유. 쌀 가질러구 오구, 고추 가질러구 오구, 기름짜 놓은거 가질러구 오구, 들락날락 오지 말래두 오느라 길에 차들이 많을 수밖에 읍지유.”
도로변에 사는 이웃 사람에게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이야길 듣고 유심히 살펴보니 정말로 그 이야기가 맞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깊이 부끄러웠던 것은 나 또한 부모님을 찾아뵙는 대개의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필요로 할 때보단 내가 부모님을 필요로 할 때가 대부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말이 부끄러움을 더하게 했습니다. “그래두 자식 욕하구 싶은 맘 없어유. 자식에게 퍼주는 재미루 농사짓는 걸유. 뭐.”
어떨런지요. 곡식 다 거둬들인 가을철보다는 한창 일손이 바쁜 철 이번 주말이라도 고향 부모님을 한번 찾아뵙는 것이요. (얘기마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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