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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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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77. 사랑이 말뿐이라면
1999년도 감리교 여선교회 공과 원고를 쓴 연고로 서울을 다녀오게 됐다. 여선교회 임원들이 연회별로 모여 공과교육을 받는 자리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두번째 모임이 있던 날, 맡은 순서를 마치고서 같이 올라간 손인화 목사와 함께 예술의 전당을 찾아갔다. ‘퓰리처상 사진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죽음으로 남긴 20세기의 증언’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사진들이 연도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한 잡의 사진이 갖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한 장의 사진이 가질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사진들이었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자연스레 생긴 긴 줄을 따라가며 사진을 보았다. 여기저기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건나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참혹함과 비인간적인 모습들, 사상이 다르다고 사람이 사람에 총부리를 겨누는 야만스러움, 지진과 화산 폭발로 인한 사고 현장의 모습, 안스러운 생존의 몸부림과 생과사의 갈림길에 선 모습들, 소외된 자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 한장한장의 사진은 그 시대가 갖고 있는 아픔과 상처들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었다.
사진과 함께 사진 옆에 붙어 있는 설명을 읽어 나가다가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사진을 만났다.
“1963년 베네수엘라에서 5백명의 해군 병사가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수도 카라카스에서 약1백Km 떨어진 푸에르토 카베요 해군기지에서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해군소속 사제인 파디랴 신부는 총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총탄이 날아오는 가운데 임종의 성사(聖事)를 계속했다. 이틀간 계속된 반란으로 대략 2백명이 사망하고 1천명이 부상당했다.”
헥터론돈 기자는 날아드는 총탄을 피해 땅 위를 기면서 길 위에서 죽어가는 희생자에게 마지막 기도를 받는 사제의 모습을 찍었다고 한다. 전시된 사진은 론돈이 필사적으로 사제에게 손을 뻗치는 빈사 상태의 정부군 병사에게 초점을 맞췄을 때, 반란군의 저격병은 여전히 그 청년에게 발포하고 있었다 한다. 청년의 등짝은 피로 물들어져 있었고, 총을 떨어뜨린 청년은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다해 사제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저토록 간절하고 애절한 매달림이 또 어디 있을까. 총에 맞아 죽어가는 청년을 끌어안으며 총을 쏘아대는 쪽을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제, 그는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총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망하게 죽어가는 젊은이들을 위해 총알 속을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자리!!! 저보다 더 분명한 자기 자리가 또어디 있을까. 사진 앞에서 한참이나 눈물겨웠다. 죽어가는 이들의 마지막 기도를 받기 위해, 어이없이 쓰러지는 젊은 영혼들에게 임종의 성사를 베풀기 위해 수없이 날아드는 총탄 속에서 방패막이처럼 선 사제. 사랑이 말뿐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길게 늘어선 줄의 흐름을 따라 앞으로 가면서도 두 눈에 고인 눈물을 쉽게 거둘 수가 없었다. (얘기마을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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