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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 농촌 총각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3781 추천 수 0 2002.01.05 22: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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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704. 농촌 총각

 

그냥 모르는 척 지내는 것이 편한(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한숨 한번 쉬고 그냥 마음속에 두는 것이 현실적인지 모른다. 꺼내 든다고 어쩔 건가.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걸. 그런 마음이 크면서도 일을 꺼내 들기로 했다. 외면해서 될 일이라면 끝내 외면하고 싶은 일,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을에서 함께 사는 청년들의 결혼문제, 소위농촌 노총각문제다. 기울대로 기운 농촌에 남아 부모님을 모시고 땅을 일구며 사는 고맙고 대견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따뜻한 시선이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혼기가 한참 지났는데도 누구 하나 관심 가지려 하지 않고. 갖는다 해도 안스러움이 고작일 뿐 막막한 세월은 여전히 간다. 

연초에 교우들과 회의를 하며 한해 동안 우리가 힘써 할 일 한 가지를 정했다. 그런 일은 단강교회 역사상 없는 일이었다. 대형교회에서 경쟁하듯 벌이고 있는 교회의 목표나 사업 계획등을 우리는 따로 세워 본 적이 없다. 

교회 규모가 작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허술하더라도 신앙을 사업화하는 것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던 것을 올해 처음으로 힘써 할 일 한 가지를 정했는데 다름 아니라 마을청년 결혼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었다. 

노력이래야 같이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일뿐 뾰쪽한 방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체념하고 있는 일을 같이 꺼내 든다는데 적지 않은 의미를 두는 일이었다. 

기도의 힘을 믿고 싶은 간절함도 적지 않았다. ‘이 땅 고쳐 주소서!’란 기도 제목을 정했다. 

 

일년에 한두 차례 통일교에서는 국제결혼을 주선하는 행사를 갖고 있는 듯하다. 

누가 그런 모임에 다녀왔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될 때가 몇 번 있었다. 때마다 안타깝고 송구한 마음이 컸다. 어떤 이는 통일교가 뭔지도 모르고 그런델 갔느냐고 싫은 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마음 아픈 얘기다. 

아무것도 안하고서 남이 하니까 뭐라하는 태도는, 남이 누구냐를 떠나 올바른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 

결혼의 적절한 때를 놓친 청년에게 결혼만큼 절실하고 절박한 일이 또 무엇이겠는가. 때로 술로 답답함을 달래는 다 큰 자식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노부모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프겠는가. 

오늘날 농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구원’에 가장 가까운 모습에 혼기를 놓친 마을 청년들이 결혼하는 일일 것이다. 

어둡고 무거웠던 집안 분위기가 한순간 걷히고, 즐거운 웃음이 담을 넘는 변화, 아기 기저귀가 바람에 펄럭이고 아기 울음소리 낭낭하게 고샅길 따라 퍼지는 생명의 기운, 뿌린 씨앗에서 싹이 나듯 생의 의미가 오롯하게 살아오는 기쁨, 땀을 흘릴만한 충분한 이유를 넓혀가는 고마움, 땅을 일구며 손발 거칠어가는 만큼 마음이 순해지는 든든함의 공유. 

 

혹 ‘선교’나 ‘헌신’을 꿈꾸는 여자 청년이 있다면 어디 먼 나라를 낭만적으로 생각지 않기를 바란다. 

땅끝은 가까이 있다. 외면해도 모를 만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지극한 사랑 하나 마음속에 씨앗처럼 품고 이 땅 농부의 아내가 된다면 그는 분명 한 지아비의 영혼을 구하고 식구들을 살리고, 마을을 변화시키는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우리는 모여 예배드릴 때마다 기도를 드린다. 

“이 땅 고쳐주소서” 

“깊이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이 땅에 주님의 손길 얹어주소서.” 뗑깡이며 애원이며 절규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소서” 

더없이 막막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이 편한 것은 기도의 힘을 믿는, 우리의 믿음 때문이다. 

늦은 밤(새벽 두시가 되어간다) 주보 원고를 옮겨적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이렇게 비장해서 누가 결혼할 맘 갖겠어요?” 

분위기가 순교를 요구하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선교’나 ‘현신’을 위해 결혼한다는 것은 사실 너무 무거운 얘기일 수 있다. 

‘차라리 농촌도 사람 살만한 동네’라 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겠냐는 아내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도 농촌 총각과 결혼한다는 것이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라면 마음 밑바닥 헌신에 대한 생각이 샘처럼 있었으면 좋겠다.

‘살만한 삶’이라 권하고 싶다. (얘기마을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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