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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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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98. 소중한 사람들
지난 연말, 우리는 망년모임을 가졌다. 10여년 단강에 살면서 망년모임을 갖기는 처음이었다. 놀이방 어머니 아버지들을 중심으로 젊은 부부들이 모여 한 해를 보내는 시간을 같이 가졌다.
모든 준비는 남자들이 하기로 했다. 시장보기부터 밥상 차리기, 설거지까지 다 남자들이 맡기로 했다. 남자들끼리 모여 부인들을 ‘감동시킬’ 방도를 궁리했다.
드디어 약속한 날. 미리 인우재에 올라간 남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을 짓고 차리고, 화롯불에 불씨를 담아 고기를 구웠다.
재성아버지 조기원씨는 얼른 전선과 전구를 구해와 전기가 없는 인우재에 불을 밝히기도 했다.
대충의 준비가 끝날 무렵 차로 부인들을 ‘모시러’ 내려갔다.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 사실 젊은 여자가 농촌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갑갑한 일인가. 살림하랴, 일하랴. 아이들 돌보랴, 무엇해 제대로 누리는 것 없이 고생하며 사는 삶, 서툴지만 정성으로 마련된 상에 부인들이 먼저 둘러 앉았다.
쑥스러움과 고마움이 가득 담긴 환한 웃음들, 남편들이 열심히 음식 시중을 들었다. 병철씨가 솥불을 때 지은 밥은 어찌 그리 맛있는지.
화롯불에 소금 뿌려가며 구운 고기 맛은 어찌 그리 좋은지, 모처럼 한 상에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를 하는 부인들을 바라보는 드문 즐거움이 기꺼운 마음으로 음식 시중을 드는 남편들 마음 마다엔 가득했다.
부인들이 차를 드는 동안 설겆이 까지 남자들이 다 마친 것은 물론이었다. 넉넉히 땐 장작불에 방은 절절 끓고 있었다. 큰 이불 하나 펴놓고 서로의 발을 이불속에 묻은 채 순서는 이어졌다.
선물을 전하는 시간, 부인들의 눈이 둥그래졌다. 분명 선물 교환은 안 하기로 했다. 그런데 선물을 전하는 시간이라니?
사실은 그것이 ‘감동 전하기’ 작전이었다. 선물 교환은 없다고 얘기해 놓고서는 남자들끼리 부인 선물을 준비한 것이었다. 준비한 선물이 기가 막혔다. 형형색색의 팬티에 브래지어, 거들과 스타킹, 심지어 생리대까지 있었다.
선물을 공개할 때마다 웃음바다가 됐다. 이 병철씨와 김남철씨가 보아온 장이었는데, 장볼때의 쑥스러웠던 일화들이 소개되자 다시한번 웃음보들이 터졌다.
창피함을 감추기 위해 생리대를 잠바 속에 감추고 나와 계산을 하려다 사이즈가 틀리다는 점원 아가씨의 지적에 다시 물건을 바꿔야 했던 대목이 압권이었다.
이어 둘러앉아 나누는 얘기, 한동네 살고 친하지 않으면 나눌 수 없는 기가 막힌 얘기들이 이어졌다. (이담에 늙어서도 우린 그 얘기들을 기억하며 때마다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게임을 하다 틀리면 틀린 사람을 가운데 엎드리게 하고선 실컷 두들기기도 하고, 층층이 손을 쌓고 있는 힘을 다해 내려치기도 하고...
밤이 늦도록 흥겨운 시간이 이어졌다. 이런 시골에서 이런 일이 다 가능한 것이구나 싶은 유별난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모든 순서를 끝내고 남자 한방, 여자 한방 각각 방을 나누어 한 이불속에 누워 잠에 빠질 때. 아, 우린 한동네 사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얘기마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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