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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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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98. 동네 이름
이종태 권사님 댁에서 저녁을 초대했다. 세월이 지나가며 갈수록 몸이 약해지자 더 약해져 마음으로는 하고싶어도 하지못할 날이곧 올까 봐 마련한 자리였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흘러가는 세월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여러가지로 솜씨가 좋은 권사님이 몇몇 마을사람들과 함께 온갖 음식을 준비하며 마을분들도 함께 대접을 했다. 막 식사를 하려는데 죽마골에 사는 김진택씨와 이병화씨가 건너왔고, 같이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권사님이 두분께 반주를 권했다. “이거 내가 교회 나오라고 드리는 거예요.”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교회 나오라고 이웃에게 따라주는 술, 흔쾌함이 가득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실 때 동네 지명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골마다 언덕마다 이름이 따로 있고, 그 이름을 마을 사람들이 지금껏 부르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자 이내 동네 골짜기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다.
윗작실을 양지쪽과 음지쪽으로 나눠 양지쪽부터 올라가면, 데령 기태 ? 절너머 - 우묵골(우묵하게 들어갔다 해서 생긴 이름이란다) -안골(인우재가 있는 곳이다) - 넓적골 ? 바우봉골- 배나무골 - 느티나무골 ? 자작나무골- 마지막골로 이어진다. 동네 맨 끝에 있는 곳이라 해서 ‘마지막골’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 재미있었다
음지쪽으로 올라가면 논골 ? 섬바우골(섬처럼생긴 큰 바위가 있다) -터골 ?서낭대기골 ? 층층골 -호진골(쭉 빠진 골이라 생긴 이름이란다) -진골(긴 골짜기라 그렇게 부른다는데 ‘긴’이 진골로 변했지 싶다) - 큰장방터골 ? 작은장방터골 -작은고개(부론동으로 넘어가는 길) - 서렁골 ? 큰죽마골 - 작은죽마골 - 굴아굴(굴이 있는 골짜기란다) - 작은논골 ?큰논골로 이어졌다.
사기막으로 넘어가는 ‘논너머’와 ‘길재’ 얘기도 나왔고 서낭댕이 맞은편에 있는 ‘마당터’ 얘기도 나왔다. 마당처럼 넓은 터가 있어 들에서 거둔 곡식을 타작할 수 있어 그렇게 불렀단다.
김진택씨, 이병화씨, 이상근 권사님은 마치 지도를 손가락 짚어가듯 골짜기와 골짜기 이름을 더듬어 나갔다. 옛부터 골짜기마다 이름을 붙였던 건 모든 골짜기들이 다 생활권이었다는 얘기 일 것이다.
나무를 하러 늘 다니고 농사도 지러 늘 다녔던 곳, 양식이 떨어지는 보리고개엔 나물을 뜯으러 나섰던 곳, 그래서 자연스레 모두가 알게 된 곳이었을 것이다. 이젠 나무를 할 일도 따로 없고, 논도 밭도 죄 묵는 것이 늘어나고 기계덕을 보면서도 갈수록 일손은 달려 나물 뜯을 시간이 따로 없다. 골짜기로 들어갈 일이 갈수록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골짜기 이름이 잊히는 건 당연한 일, 김진택씨의 얘기는 탄식에 가까웠다.
“그런걸 다같이 살문서 전수를 받아야 하는데, 이젠 죄 잊어버리게 생겼어요. 어디가 어딘지, 왜 그런 이름이 생겼는지 쪼끔만 시간이 지나가문 누가 그걸 알겠어요?”
다음번엔 만나 동네 지도를 그리고 지도위에 각각의 이름을 적어 넣자고 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네의 이름, 그러나 한 개밖에 없는 이름들을. (얘기마을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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