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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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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64. 하나님 전상서
<하나님 전상서
새해가 밝아 옵니다.
무겁고 힘겨웠던 한 해를 보내게 하시고 새로운 한 해를 맞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마음으로부터 묵은 걸 버려야 함에도 무딜대로 무디어진 우리들은 겨우 새로운 달력을 걸면서야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곤 합니다.
언제나 마음 훤한 새해를 맞이하게 될런지요? 또 한 번의 새해를 맞으며 오늘은 마음의 소원을 주께 아뢰려고 합니다.
주께 바라는 것 많은 듯 싶으면서도 마음을 헤아려 보면 그냥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픈 마음이 큽니다.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사는 삶, 그게 내 생애 내가 바라는 것의 전부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그러면서도 오늘은 투정 부리듯 주님께 마음의 소원을 풀어 놉니다. 들으시고 부디 들어주소서.
마을에 함께 사는 사람들중에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젊은이들 다 떠난 농촌에 남아 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들이지요. 사실 그들은 무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별반 소득은 없는. 그럴수록 바라보기만 해도 고마운 이들이지요. 주님이 주신 땅을 땀으로 일궈 사람 먹고사는 양식을 거둬들이니 그보다 고마운 이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 문제는 그 청년들 대부분이 노총각이라는데 있습니다. 농촌에 산다는 이유로 그들은 결혼을 못하고 있습니다. 농촌에 산다는 것이 무슨 천형(天型) 이라도 되는 양,누구도 따뜻하게 관심 갖는 이가 없습니다.
노부모를 모시고 고향을 지키며 사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들,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사는 그들의 삶이 누구보다 행복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마음이 무너집니다. 허전함과 외로움이 어느 병보다도 깊게 마음으로 퍼집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노부모의 더 아픈 마음이야 새삼 일러 말할 것도 없지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긴긴밤이 적지 않지요.
주님! 새해를 맞으며 다른 소원 아뢰지 않겠습니다. 부디 마을의 청년들 짝을 찾아 주십시오. 착하고 성실한 짝을, 주님 부디 맺어주십시오. 이 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구원’의 기장 구체적인 모습은 바로 그 모습이지 싶습니다. 쓸쓸했던 집에 아기 울음 소리 이어지게 해주십시오. 야단치실지 몰라도 이 땅에서 제가 그리는 구원의 모습 중 하나는 분명 그런 모습입니다.
주님! 주님을 믿는 신실한 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소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자매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소서. 우리의 힘과 우리의 입술로는 불가능하오니 주님이 움직여 주소서.
그들의 눈을 겸손하게 낮추시고 마음에 낀 욕심의 꺼풀을 벗겨 주소서. 화려한 조건만을 생각지 말게 하시고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는 지극한 마음을 주소서. 거룩함을 큰 예배당에서만 찾지 말게 하시고 작은 농가와 작은 논밭에서도 찾게 하소서.
고운 손을 자랑하기보단 거친 손을 떳떳하게 생각하며 정직하게 흘리는 땀의 가치를 인정하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남의 나라 먼 땅만 찾지 말게 하시고, 가장 가까운 곳, 그러나 모두가 등을 돌려 실제론 가장 먼 곳이 되어버린 농촌 -내 형제를 찾게 하소서.
“이게 믿음이구나, 이게 사랑이구나! 이게 주님의 은혜구나!”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믿음의 파문을 일으키게 하소서.
새해를 맞으며 모든 소원 다 잊고 한 가지를 구하오니 주님. 부디 들어주소서.>
<며칠 전, 섬뜰 윗담말에 사는 영택씨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갑자기 아스팔트가 앞을 가로막으며 한판 붙자고 했다나요.
술을 먹고 오토바이를 타다 도로에서 넘어져 온몸에 상처가 적지 않았습니다. 술을 먹고 오토바이를 타다니, 얘길 듣는 사람은 누구라도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탄 사람을 비난할 것입니다. 하기야 그런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위험하고도 잘못된 일이지요.
하지만 나는 그를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그를 변호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와 한 마을에서 살며 그의 처지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입니다. 마흔이라. 마흔을 맞으며 가장으로서 가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무겁게 느껴본 경험이 있기에 마흔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를 어렴풋 짐작합니다. 마흔이라는 말의 무게를 알기에 영택씨가 느끼는 허전함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동네의 적지 않은 청년들이 그렇듯이 결혼의 때를 놓친 노총각입니다. 도시에 나가사는 동생들은 다 결혼을 했고 때가 되면 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을 데려오기도 하는데, 혼자인 아버지를 도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그는 아직 결혼을 못했습니다.
갈수록 무너져가고 꺾여져 가는 삶의 의지들. 다친 얼굴에 흉터 남을까 사람들이 염려할 때 아무러면 어떠냐고 남의 일처럼 건성으로 대답하는 그의 마음은 한없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울컥. 자기 마음을 자기가 이기지 못할까 그를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방앗간 바로 아랫집에 사는 재철씨는 59년 돼지띠. 이 글을 쓰는 나와 동갑내기입니다. 재철씨만 보면 나는 괜히 미안해집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과 3학년인 아들, 내년에 1학년에 들어가는 막내, 내가 세 아이의 아버지요 학교의 학부형인 것과는 달리, 같은 나이 동갑이면서도 재철씨는 아직 결혼을 못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자다가도 그 생각이 나면 벌떡 일어나 잠을 못 이룬다는데.
농촌에 사는 것이 무슨 천형인지 아무래도 장가 문제는 막막하기만 합니다. 내가 농촌에 살았으면 나 역시 겪었을 일. 외지에서 들어와 가정을 이루며 사는 목회자를 부러운 듯 바라보며 술로 마음을 달래기가 쉬웠을 일입니다.
재철씨를 보면 또 하나의 나를 보는 것 같은 아픔이 금방 배입니다.>
앞의 글은 ‘복음과 상황’이라는 잡지에 뒤에 글은 ‘기독교세계’에 썼던 글이다. 이 땅에 살면서 죄스러움으로 마음이 조여들 때가 있는데, 내 나이 또래의 청년들(노총각)을 볼 때이다.
더없이 순박한 사람들, 그들의 마음이 술과 탄식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면 송구함으로 마음이 막막해지고 내가 너무 무능력하고 무심한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든다.
이글을 읽는 이들 중에 혹시 주변에 소개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연락해주시면 좋겠다. 마을 주변에 열 댓명의 청년들이 있으니 어울릴 만한 사람과 만남을 주선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새해에는 ‘입이 귀에 닿도록’ 웃을 수 있는 일이 주변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얘기마을1998)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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