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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5. 부숴지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5286 추천 수 0 2002.01.05 22: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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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85. 부숴지다

 

“너무 일을 되게 했어유.”

이필로 권사님께 윤연섭 할머니의 안부를 물의니 병원에 입원한지 여러날이 지났고, 원주에서는 더는 손을 쓸 수가 없어 서울 아들네로 올라갔다는 대답이었다. 온몸의 뼈마디 마디가 어디 한군데 성한 데가 없이 죄 고장나고 아프다는 얘기였다. 

“허구헌날 일만하며 진지라곤 밥 한 숟가락에 된장간장 찍어 드셨으니 어디 몸이 견뎌 났겠어유?” 

“지난 가을 여주로 고구마 캐러 일 댕길 때도 도시락을 싸가지구 댕겼어유. 점심 싸가면 천오백원 더 받았는데, 찬데 일하구 찬밥 드셨으니....”

아랫작실 음짓말 산비탈 아래 머리 숙이고 들어가는 조그만 집에 사시는 윤연섭 할머니, 할머니는 결국 뼈마디 어디 하나 성한데 없기 까지 일 하다간 서울로 올라가고 말았다. 

“그래두 언젠가 병원에서두 싸우다시피 해서 나왔대유, 돈 들어가는데 뭣트러 병원에 있냐구, 내보내 달라구 싸웠던 것이지유.” 

당신 몸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며 돈 들어가는 일이라면 미련하다 싶을만큼 피하였던 할머니, 그 돈 다 뭐할거냐 물으면 “자식 주지” 하며 웃곤 하시던 할머니. 

이젠 할머니 모습 또 언제 뵐 수 있을까 싶다. 

 

 할머니 마음 이해되는 구석이 있다. 그 가난했던 시절, 큰 아들은 어릴적 집을 나갔다. 공부시켜 달라며 애원했지만 공부시킬 돈이 없었다. 호맹이(호미)로 글씨를 그림을 그리는 등 공부에 대한 꿈이 컸던 아들은 어느 날 정말로 나가고, 말았다. 그리고는 십 수년 소식이 없었다. 죽었나 살았나? 소식을 모르던 어느날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혼을 하니 와 달라는 얘기였는데, 한가지 아들의 부탁이 있었다. 부모님이 아니라 친척으로 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사연이 가구했다. 무작정 집을 나선 아들이 뉘집인가 들어가 머슴 처럼 일을 하며 살았다. 아이가 총명함을 본 주인이 공부를 시켜줬고 그렇게 정이 쌓이자 아예 양자로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그때 큰아들은, 자신에겐 부모님이 안계시다 거짓말을 했고, 그분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양아들이 됐던 것이었다. 그렇게 자라 결혼을 하게 된 아들이 친부모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며, 부모로써가 아니라 친척으로 참석해 달라 했으니 그 얼마나 기막힌 부탁이었을까. 

“그래두 좋았어유. 하나두 섭섭하지 않았어유.” 

 언젠가 그때 할머니 심정을 여쭙자 할머니는 정말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아들을 키워 준 분들이 오히려 고마웠노라고했다. 

그 아들에게 빚진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들에게 진 마음의 빛을 갚을 수 있는 길은 당신 몸 부숴지도록 일을 하여 그나마 번 돈을 아들에게 남겨주는 것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한 것일까. 

‘부숴지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얘기마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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