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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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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23.아궁이에 불 때기
지난 겨울에 있었던 일입니다. 연세대 매지 캠퍼스 재활학과 학생들의 겨울 농활이 단강에서 있었습니다. 때마다 단강을 찾아 귀한 땀을 흘린 지가 벌써 여러 해, 학생들이 농촌을 위해 땀 흘리는 모습은 때마다 귀했습니다.
방학을 하자마자 학생들은 짐을 꾸려 단강으로 들어왔습니다. 타지에 사는 학생들이 많아 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들이 간절했을 테고, 밀린 공부며 하고 싶었던 일이며 아르바이트며 여러 가지 계획이 많았을 텐데 그런 것 다 물리치고 학생들은 농촌으로 들어왔습니다.
지어본 적 없는 농사지만 턱없이 일손이 달리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땀을 흘렸습니다. 누가 크게 알아주는 일도 아니고, 돈이 되는 일도 아니었지만 (돈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스스로 회비를 내더군요) 학생들은 비가오면 비를 맞고 뙤약볕이 쏟아지면 그 뜨거운 볕을 그대로 맞으며 논에서 밭에서 일을 도왔습니다.
그런 모습이 그렇게 고맙고 미더울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들에게 겨울 농활을 제안하였습니다. 일철에 와서 땀을 같이 흘리는 것도 좋겠지만, 모처럼 쉬는 농한기에 편하게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서로 가까워지는 것도 좋지 않겠냐며 겨울 농활을 권했습니다. 눈이 오면 산토끼라도 같이 몰고 밤엔 사랑방에 모여 짚신 삼는 것을 배우는 등, 겨울엔 겨울대로 의미있는 시간이 있을 듯 싶었습니다.
일도 안 하면서 어떻게 미안하게 와 있느냐며 두어 해 주저하던 학생들이 지난 겨울 큰 맘을 먹고 단강을 찾아왔습니다. 스물 댓 명의 대학생들이 마을을 찾으니 마을엔 금세 젊은 기운이 넘쳤습니다.
마을 외진 곳에 마을 사람들과 지은 흙집 ‘인우재’를 숙소로 내어 주었습니다. 전기도 보일러 시설도 없는 불편한 곳이지만 조용한 곳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는 배려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인우제’가 홀랑 불에 탈뻔한 일이 생길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날이 추우니 불을 넉넉하게 때는 게 좋겠다고 한 말이 화근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손으로 방바닥을 만져보며 방바닥이 뜨거워지도록 불을 땠고 그러고도 모자라 이장 댁으로 저녁을 먹으러 내려오며 아궁이 가득 나무를 집어넣고 내려왔는데 밤늦게 올라갔을 땐 막 집에 불이 번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방바닥에 깔았던 멍석과 댓자리, 담요와 담요위의 베개까지를 까맣게 태운 불이 막 집으로 번지려던 참이었습니다. 기겁을 한 학생들이 서둘러 불길을 잡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스무명이 넘는 대학생들 중에 아궁이에 불을 때 본 경험이 있는 학생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 쉬 믿어지질 않았습니다. 세대간 문화의 깊은 단절을 아찔함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얘기마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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