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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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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66. 변학수씨네 개 이야기
변학수씨네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열세마리를 낳았습니다. 많이 낳아도 그렇지, 저하나 먹을 젖꼭지는 타고 나야되는데 하도 많이 낳다 보니 젖꼭지가 모자를 지경이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강아지가 한마리 한마리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날 때도 떼를 지어 태어나더니 죽을 때도 떼를 지어 차례차례 죽어갔습니다.
모두 죽고 남은게 한마리, 딱 한마리만이 살아남았습니다. 한마리 남을거면 차라리 한두마리 건강하게나 낳을 일이지. 낳긴 수도 없이 낳고 죄 죽다니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변학수씨네 강아지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것은 덧없이 죽어간 강아지 얘기가 오늘 우리들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많다고 좋은 일만은 아닌 법. 그동안 우리는 오직 ‘많은’것만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돌볼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교인을 모으고 그걸 ‘교회성장’이니 ‘성공하는 목회’니 자찬해 왔던 우리들이라면 조용히 변학수씨네 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듯합니다. 젖을 먹일 만큼, 살려낼 만큼 낳고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젖이 부족하면 많이 낳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허무하게 죽는 생명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 많이 모으려 하기전 먹일 ‘젖의 양’을 확인하는게 필요합니다. 어떤이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먹일 영혼의 젖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라고요. 물론이지요. 하지만 그 말을 하려면 주님 앞에 철저하게 내가 무(無)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무’가 되지 못하는 만큼, 내가 살아 있는 만큼 젖은 줄어들게 마련이니까요. 사실 많은 경우 우리는 주님의 젖을 주려하기 보다는 내 젖을 주려는 무모함에 빠져 있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구경꾼이 아니라 참된 제자 한 사람입니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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