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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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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탕, 탕, 탕!
영화를 만드는 분들에게는 참 송구한 일입니다만,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변명 삼아 말하자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습니다. 텔레비전이나 핸드폰, 인터넷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영화관을 찾는 시간이 뒷전으로 밀려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어 영화관을 찾기로 한 데에는 그동안의 미안함을 덜려는 궁리도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목회자에겐 휴일의 의미를 갖는 월요일의 이른 아침, 아내와 딸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날씨는 차갑고 걷기에는 조금 멀다 싶지만 기꺼이 걷는 편을 택했습니다.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영화관이 있다는 것이 새삼 반가웠습니다. 수지타산으로 보자면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일이다 싶은데, 구청에서 묵묵히 감당을 해주니 고마운 마음이 컸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길을 걸어가며 영화 <서울의 봄>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딸로서는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니, 영화를 보기 전 먼저 이해할 것들이 있겠다 싶었지요. 어느새 영화관, 그런데 영화관에 도착해서는 흠칫 놀라고 말았습니다. 월요일 아침 첫 상영이니 관객이 많지 않겠지 생각하고는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영화관을 찾아왔고, 생각지도 못한 지인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겹쳤습니다. 1979년이면 대학교 2학년 시절, 시위가 다반사인 하수상한 시절을 보냈지만, 도대체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했습니다. 따로 알려주는 곳도 없었고요. 내 젊음의 시절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걸 모르고 지나갔다니, 허탈함과 부끄러움이 마구 엉겼습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불사하는 사람들,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는 일이 국가의 안위와 인간으로서의 도리보다도 우선이었던 사람들, 책임 있는 자리면서도 어떤 것도 결단하지 않고 떠밀리듯 대세를 따름으로 부끄러움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던 사람들, 인간의 어둡고 악한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날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딸 또한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어려울 때마다 거친 숨을 몰아쉬기도 했습니다.
부끄러운 선택을 했던 이들이 오랫동안 떵떵거리며 누렸던 부귀영화와, 대세가 확연하게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집단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대항했던 사람들이 맞이해야 했던 비참한 결과는 고통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영화의 끝부분, 심장에 대못이 박히는 것처럼 다가온 장면이 있었습니다. 쿠데타에 가담했던 이들의 이름과 그들이 어떤 영화를 누렸는지를 나열하는 때였습니다.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천지가 다 울린다 싶은 묵중한 효과음이 뒤따랐습니다. 탕, 탕, 탕, 서로에게 총을 쏘던 영화 속 총성보다도 부끄러운 이름 앞에 울리는 울림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느껴졌던 것은, 그것이 역사가 내리는 엄중한 심판의 소리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는 것보다 더 준엄한 심판은 따로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차로>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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