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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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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배수진너 신진서
바둑을 잘 알지 못하는 제게도 지난 며칠 동안은 마음이 들뜬 시간들이었습니다. 한국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때문입니다. 이 대회는 한국 중국 일본의 국가대항전으로, 각국을 대표하는 다섯 명의 기사들이 나와 연승제로 시합을 합니다. 한 번 이기면 질 때까지 양국의 기사와 시합을 하는 방식이지요.
중국의 첫 번째 선수로 나온 셰얼하오의 기세가 무서웠습니다. 무려 7연승을 거두었으니까요. 덕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기사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선수는 단 한 명, 신진서뿐이었지요. 중국 선수 5명과 일본 선수 1명을 모두 이겨야 가능한 우승, 수치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로는 꿈꾸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진서 선수는 뚜벅뚜벅 자기 걸음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는 것을 잊어버린 듯한 셰얼하오의 기세를 막아내더니, 일본의 마지막 선수 이야아마 유타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지요. 중국 대표로 남은 네 명 중 첫 번째로 나온 자오천위를 이기고 나자 남은 선수들은 딩하오와 커제와 구쯔하오, 중국 랭킹 1, 2, 3위인 선수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두꺼운 벽, 그야말로 진검승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한 명이 그들 모두를 당해 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 신진서에게 주어진 무게가 너무 무겁다 싶었습니다. 이런 것을 단기필마(單騎匹馬)라 하겠지요, 홀로 말 한 필에 올라 적진으로 뛰어드는 형국이었습니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영화에서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진서는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만만한 상대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커제를 이기고 딩하오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선수는 구쯔하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 마지막 한 판에 우승이 달려 있고 우승 상금 5억 원이 달려 있었으니, 누구의 마음이 떨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루에 한 판씩을 두는 방식, 무엇보다도 체력이 버틸까 싶었습니다. 정신력도 바닥을 드러낼 것 같았고요. 어느 종목보다도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바둑이니, 기대와는 달리 한순간 무너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습니다. 언제 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내 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일까요? 혼자서 내로라하는 적의 장수들을 차례로 맞아 일대 일 승부를 겨뤄야 하는 일은 얼마나 비장한 일이겠습니까? 그럴수록 신진서는 두려움을 다 떨쳐내고 아예 반상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동안의 대국과는 달리 마지막 시합에서 신진서는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을 드러내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엎치락뒤치락 판이 어지러웠지만, 마지막 승자는 신진서였습니다. 신라면배 16연승, 마지막 선수로 거둔 6연승, 대회 4연패, 누구도 깨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는 빛나는 기록들을 마침내 신진서는 써냈습니다.
갓진서, 수호신 등 신진서에게 보내는 찬사가 어색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없는 말이지만 저는 신진서를 ‘배수진을 친 사람’이라는 뜻을 담아 ‘배수진너’라 부르고 싶습니다. 하나의 전설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분명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교차로>20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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