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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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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까지 아버지는 내 이발을 손수 해주셨다. 목사관 귀퉁이 바람 잔잔한 그늘에 의자를 놓고 보자기를 목에 우끈 묶고선 수건으로 재차 목을 동인 뒤 아버지는 이발가위로 차각차각…. 청소하러 온 교인들이 보고는 “목사님! 언제 이발까지 배우셨어요? 의진이는 참말 좋겠네. 아빠가 이발까지 다 해주시고….” 아버지는 병들어 누워 계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이발도 종종 해주고 그러셨다. 하지만 나는 삼거리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하고 싶었다. 아버지표 이발은 뭔가 한 가지 부족한 거 같았고, 가위가 귀밑머리 끝이라도 물면 따갑다며 징징거렸다.
나이가 먹고, 아버지는 이제 돌아가셔서 없고, 난 히피 장발족 우두머리다. 염소처럼 수염까지 길렀으니까. 그렇다고 개량한복을 착용한 산신령 도사 흉내는 절대 안 낸다. 그냥 앞서 말했듯, 이발 해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까 그 때부터 장발족이 된 거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 이발을 해드릴 차례! 예초기를 들고, 얼음 둥둥 띄운 물 한 통, 김치 잘게 썰어 깨도 뿌려 주먹밥 뭉쳐설랑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 멀리 선산에 벌초하러 나선다. 어려서 아버지가 해주셨던 이발, 이제 내가 어른이 되어 이발가위를 들었구나. 살아계실 때는 이발 한 번 못해 드렸는데, 돌아가신 뒤부터는 내가 이발사다. 시골 어귀 곳곳 묘지마다 산뜻하게 ‘벌초 이발’을 마친 봉분들이 늘어만 간다. 머지않아 ‘한가위’ 추석이로구나. 가위를 쓴다고 한가위는 아니지만, 꼭 그래서인 것만 같아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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