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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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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고향이 어디십니까?” 묻기보다는 “지금 살고 계신 댁은 어디랍니까?” 보통 그렇게들 먼저 묻는다. 셋방살이인지 아닌지, 빈촌인지 부촌인지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오로지 최종 도착지만 알면 되는, 돈 귀신에 미쳐 돌아가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먼젓번 만난 어떤 길손이랑 고향 이야길 나눴는데, 서울이 고향인 그는 아기자기 신났던 골목 풍경을 추억했고, 강진 다산초당 옆 마을이 고향인 나는 바닷가 외진 동네의 먹먹한 가난과 그래도 순하고 여리던 옛 동무들을 추억했다. 공부하러 서울로 올라온 뒤론 살구꽃 핀 고향 산천에서 뛰노는 꿈만 날마다 꿨다. 목사가 되자 고향에 내려가 작은 교회를 차렸다. 돈 대신 쌀을 갖다 바치던 할매들은 봉급을 사양하고 근근이 ‘자기 알아서 사는’ 젊은 목사에게 미안해했다. 몇 달 살다 못 견디고 떠날 줄 알았을 텐데, 나는 십년 동안이나 꿋꿋이 곁을 지켰다. 그리고 어느해 겨울, 두 번째 고향삼아 혈혈단신 떠나온 담양 땅은, 아무 연고도 없는 생면부지. 이후로는 정처 없는 유랑 길. 이 길 위에서 나는 까마귀밥이나 되어 아낌없이 내버려야지. 그대랑 둘이 자유롭고 거침없이 흘러가야지.
우리 동네 어르신들은 가난과 불편 속에서도 얼굴은 행복과 안도가 잔뜩 씌어 있다. 꽃 소쿠리 들고 봄마중을 나가고 싶은 할매는 국밥 먹고 귀가하던 나를 붙잡고서 날씨 뉴스를 봤냔다. 사진작가와 소설가, 시인 형들과 매화마을 하동 악양에서 재미나게 놀았는데, 벌써 기운 센 매화는 송알송알 꽃순을 밀어올리고 있더군. 혹한 끝에 살아남은 할매는, 내가 속보로 전한 봄소식에 홍매 꽃 닮은 붉은 미소를 살살 날리더라. 가난했어도 행복했던 날들, 고향을 마음에 담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맘속 깊이 봄비가 내리고 봄바람이 일어나길. 가슴 속 매화 밭은 꽃과 향기로 대뜸 술렁거리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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