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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고물 경운기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351 추천 수 0 2010.08.22 13: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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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없이 쉬는 낮에는 명주잠자리나 메밀잠자리의 착륙장으로 쓰이고, 밤엔 달맞이꽃이 오빠~ 하고 부르며 기대기라도 하면 경운기는 아직은 쓸 만한 어깨를 살포시 내어주고는 한다. 어슴새벽 논일 나갈 때 사부랑삽작 운전대에 오른 주인장 즐거우라고 젊고 싱싱한 배기통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데, 우달탈탈 고물이 다 된 마른기침 소리라서 마음 한쪽 애마를 때가 있다. 천하장사 트랙터에 밀려 부스럭일이나 하는 신세가 되었어도 저뭇하게 동구 밖에서 돌아오는 시간엔 다리에 맥 풀린 동네 아짐씨들 죄다 태워 올 수도 있고, 잡살뱅이 물건들도 실어 나를 수 있어 아직까지는 버림받지 않고 집두리 안에서 물끄럼말끄럼 한 식구로 살아가고는 있다.

고된 세월을 거쳐 몰골스럽게 변하였어도 동네에서 제일 멋지던 한 시절도 있었다. 그땐 학교 가는 애들이 서로 태워달라며 달려들었고, 소똥도 퇴비거름도 미안해서 뒷머릴 긁어댔다. 혀짤배기로 노래하거나 아니 별옴둑가지 소리를 다 내싸도, 주인은 엔진이 정말 좋다면서 목욕도 자주 시켜주고 자랑도 어찌나 쳐대는지 우쭐할 때가 참 많았었다. 꼽꼽쟁이 주인이라도 기름칠이 잦고 부품도 자주 갈아주고 그랬었는데 언제부턴가 어깻숨이 가빠지고 녹과 같은 부스럼딱지가 늘어가자 집구석에 틀어박히는 날이 늘어갔다. 서쪽 하늘 어둠별이 뜨는 밤이면 고물 경운기는 같이 논일 밭일 하던 친구들이 보고파서 이슬눈물을 매달기도 한다. 우리 동네에 이제 고물 경운기는 서너대뿐만 남았고, 모두 쓰렁쓰렁한 가슴을 안고서 숲정이에 움푹 파묻히는 신세들이다. 과거처럼 활개춤을 추던 때가 다시 올까 몰라라. 찰배미논이 다 내 차지였던 때 말이다. 고물 경운기를 보고 있노라면 늙고 병들어 안쓰러운 누렁이에게 그러하듯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싶어진다. 아무리 기계라도….  ⓒ 임의진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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