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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육식과 채식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621 추천 수 0 2011.03.16 20: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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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구름, 양떼구름 사이로 눈구름이 설핏 비친다. 처마 끝 요란한 붕어빵 풍경소리, 성탄특집 라디오의 팻 분이나 빙 크로스비 캐럴이 응달진 설경에 두루 퍼지고, 또로롱 염소똥 떨어지듯 하늘에서 산새들이 하강하여 ‘백 보컬’을 보탠다. 이런 추운 날 엄마도 없는데 김장김치는 어쩌나 걱정했다가 아랫집 저 고갯집 오가리(항아리)에 든 배추김치 두둑한 선물들. 고춧가루 낀 앞니엔 든든한 행복이 또 한가득. 소금을 풀어설랑 동해바다 바닷물을 닮은 짠맛을 만들고, 거기다 절인 배추는 긴긴 겨울 반찬거리 근심을 덜어준다. 가을토록 애타게 짐승을 찾아 살생하고 고기를 말려 저장하지 않아도 겨울을 거뜬히 날 수 있도록 예비한 우리네 조상들의 전통 김장 김치. 먼저 단군 할아버지께 넙죽 감사드릴 따름이다.

구제역 전염병 소식은 예삿일이 아니렷다. 과하다 싶은 육식 문화에 대해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김치 먹는 겨레’임을 각성시킬 절호의 기회다. 대형마트에 값싼 치킨 소식조차 별세계 이야기. 마을 구판장엔 쥐포나 오징어뿐이다. 참나무 숯불에다 고구마와 감자, 밤을 구워먹고 어쩌다 한번 삼겹살로 도란도란 술을 마신다. 그러다가도 결국엔 김치를 꺼내는데 남도에선 ‘싱건지’라 불리는 물김치는 그중 으뜸 안주다. 그대랑 싱건지 한 접시 검박한 주안상으로 눈 내리는 겨울밤을 같이 보내고 싶다.

나는 무슨 맹렬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쑤시개를 액세서리로 들고 다니는 배불뚝이 육식주의자도 아니다. 단골로 출입하는 고기 굽는 식당도 없고, 뭐 일단 돈부터 없으니깐 쩝쩝. 손님들이 채워놓고 가는 냉장고의 병맥주와 소주와 싸구려 포도주. 흔한 주식 하나 없으면서 주식(酒食)주의자에 가깝겠다. 내심 광우병보다 알코올 중독이 더 염려되는 인생.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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