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시골편지] 이 별의 이별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699 추천 수 0 2011.06.06 12:56:09
.........

20110505_01200126000002_02M.jpg

집을 비운 사이 내 산밭에 작약 뿌리며 라벤더며 꽃나무들을 누군가 움펑 퍼갔다고, 민박집 하시는 한씨 아재가 전화기 저편에서 걱정이시다. 지난주부터 대구에서 그림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 출타했더니만 이런이런…. 등산로에 인접한 밭들엔 그런 일이 종종. 어떻게 남이 정성스럽게 가꾸는 화초나 채소를 슬쩍해 가는지 모르겠어. 아재 말씀으로는 전선도 끊어가고 배수로 철덮개도 들고가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래. 집을 비우면 온갖 근심걱정…. 작별 인사도 없이, 예고도 없이 잃어버리고 떠나가고 사라지는 친구들 땜에 마음 아프다. 그렇다고 그걸 날마다 지키고 앉아 있는 꼴도 우습고 말이야.

난 교회 예배당에서 나고 자랐다. 바다가 배를 염색하듯, 수많은 교회의 성물과 공간은 나를 염색해갔다. 특히 널따란 예배당은 놀이터로 쓰였다. 신이 우리를 찾으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술래가 되었다는 얘기는 이미 숨바꼭질 놀이를 하면서 알아차렸다. 특별히 교리 공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신들의 얘기는 우리들 곁에 가까이 있었다. 나는 가위바위보엔 늘 젬병이었다. 그래 자주 술래가 되어야 했어. 숨은 동무들을 찾아내려고 구석구석 눈에 불을 켜고 뒤지는데, 어느 날 다운증후군 장애인 형이 톱밥 창고에 들어갔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똥통에 빠졌나 뒷개울에 빠졌나 부모님까지 총출동, 놀이는 그만 악몽이 되어버렸다. 기별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대구 친구들과 밤새 들이부은 포도주, 퉁퉁 부은 눈을 간신히 떴다. 밤새 내가 외계 비행접시의 공짜여행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고, 기별 없이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별에 남아 있다니. 오로지 당신이 이 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야. 당신도 갑자기 이 지상에서,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바란다. 우리의 이별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임의진|목사·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57 임의진 [시골편지] 몸으로 쓴 사랑편지 file 임의진 2011-09-04 2693
4656 김남준 이 세상은 우리에게 오래 참는 사랑을 요구합니다 김남준 2012-01-08 2693
4655 이현주 수행에 대하여 이현주 2005-12-22 2695
4654 이현주 슬기로운 것인가, 이기적인 것인가? (마25:1-13) 이현주 2012-04-04 2695
4653 김남준 그리스도인의 목표 김남준 2005-07-19 2696
4652 한희철 2299 그랭이질이 아쉽다 한희철 2006-12-30 2696
4651 필로칼리아 양과 염소 최용우 2012-04-21 2697
4650 이해인 살아있는 날은 이해인 2005-04-24 2698
4649 한희철 2231. 내가 밥상을 받지 않으면 한희철 2005-12-30 2698
4648 이현주 독사를 삼킨 농부 이현주 2007-11-10 2698
» 임의진 [시골편지] 이 별의 이별 file 임의진 2011-06-06 2699
4646 이현주 넓이 보다 깊이 이현주 2004-11-03 2701
4645 한희철 정직하게 한희철 2012-02-12 2701
4644 김남준 죽음의 공포보다 강한 것 김남준 2005-09-15 2705
4643 필로칼리아 양심 최용우 2011-11-20 2705
4642 홍승표 [이해인] 무지개 빛깔의 새해엽서 홍승표 2005-01-06 2706
4641 이해인 강물이 조용히 말해주네 이해인 2005-07-07 2707
4640 이현주 호스피스 병동 이현주 2012-05-21 2707
4639 홍승표 [김종삼] 묵화(墨畵) 홍승표 2005-02-15 2708
4638 필로칼리아 흘러가는 강물처럼 최용우 2012-04-11 2708
4637 이현주 초여름 떨어진 감열매 이현주 2002-02-15 2710
4636 임의진 [시골편지]핀란드 시골 마을 file 임의진 2009-11-28 2710
4635 필로칼리아 기억의 때 최용우 2011-12-29 2710
4634 김남준 교만하지 않고 김남준 2012-01-14 2712
4633 이현주 변모 사건은 초능력?(막9:2-9) 이현주 2012-04-08 2712
4632 이해인 유혹에서 지켜주소서 이해인 2005-09-08 2714
4631 이현주 아, 이게 무엇일까요? 이현주 2005-12-22 2715
4630 홍승표 [최종진] 신앙 홍승표 2005-02-15 2716
4629 한희철 2281. 홀로 오는 것과 쌍으로 오는 것 한희철 2006-12-12 2717
4628 이현주 화를 내는 이유 이현주 2008-01-13 2717
4627 필로칼리아 예민함 최용우 2011-10-24 2717
4626 이현주 금반지와 금목걸이 이현주 2012-05-14 2717
4625 이해인 벗에게 이해인 2005-07-23 2718
4624 이현주 니느웨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자인가? (눅11:29-32) 이현주 2012-04-04 2719
4623 이현주 비어 있는 산 같은 사람(눅11:24-26) 이현주 2012-03-08 2720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