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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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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판처럼 빛나던 숙녀들은 목마 대신 버스를 타고 시골을 떠나갔다. 남은 여자들은 일명 몸뻬를 집어 입고, 남정네처럼 비슷한 차림으로 배롱꽃 핀 동구 밖에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메마르고 뻑뻑한 작두샘엔 쿰쿰한 흙탕물만 새나오고, 갈지 않은 논밭은 수풀이 우거져서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의 바람 혼자 뒹굴다가 지나가곤 하였다. 동네는 다시 늙고 휜 향나무와 허기진 새들 진종일 흐득이는 검불더미, 석탄굴 같은 캄캄한 밤의 연속이어라. 예수 재림을 적극 반대하며 은행빚까지 얻어서 세운 교회당은 해마다 교인이 줄어들더니 전도사의 얼굴에 수심조차 가득하다. 오히려 교회당 바깥이 보다 더 거룩한 성전이라서 나는 모른 척 그 앞을 지나치며 걸어간다.
내가 한때 교회당을 지킬 때, 붉은 벽돌로 짱짱하던 담벼락을 망치를 들어 부수고선 거기다 조르라니 나팔꽃을 심었다. 교회 마당엔 손바닥만한 밭을 만들어 우엉과 토마 토를 심고 누구든 따가라 했다. 파전, 굴전, 김치전 부쳐설랑 농부들에게 막걸리 따르면서 내 인생의 봄날을 살았었다. 저 전도사는 언제서야 땀에 전 옷을 그늘에 말리면서 막걸리를 같이 마시고, 휴우- 한숨이 섞인 담배를 농부들과 같이 태우게 될까.
찔레나무 덤불에서 아기 새가 파드득 날아오른다. 어디서 낫 가는 소리를 들었던 모양인가. 밭에 시퍼렇게 아픈 깻잎들 우거지고, 웃을 때 덧니가 재밌는 염소는 연둣빛 마음들을 뱃속에다 차곡차곡 쟁이고 있는갑다. 풀꽃 가득한 강변마을…. 엄니 아부지 오늘도 땀내 나게 일하신다. 독한 맘 집어먹고 틀니를 꽉 물며 견뎌내는 고된 농사일. 땀으로 미끄덩거리는 낫을 고쳐들고 두렁의 풀을 베는데, 썩썩 낫이 잘 드는 소리가 먼발치에서도 들려온다. 농부에게 있어 낫은 낮이리라. 낮때 동안 낫을 내던져본 일 없이 불끈 쥐어들고, 검게 우거진 수풀 같은 세월을 헤쳐나오기를 수십해. 산허리께 공동묘지 무덤은 집보다 많고, 무덤의 이름패가 집에 걸린 이름패보다도 많은 산촌. 사는 날 동안 남은 이들은 오로지 낫과 함께 낮을 보내리라. 남은 생애를 썩썩 베어내며….
임의진|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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