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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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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면 이름을 꼭 물어본다.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어둔 밤하늘이 별빛으로 휘황해지려나. 황지우 시인의 본명은 황재우다. 타자기를 쓰던 시절 오타가 그만 필명으로 굳어버렸단다. 우연히 얻은 이름으로 황재우는 황지우가 되었고, 세상은 시인의 새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내 청춘을 시로 가득이 물들였다. 나는 시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가장 행복했고, 책장엔 시집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그러다가 이젠 시인의 시집 속에 있는 이름들조차 낱낱이 기억하게 되었다. 가령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에 등장하는, 시집을 내지 않은 시인 아카리오 코타포스, 발파라이소의 시계공 돈 아스테리오 알라르콘, 아홉살하고 반 먹은 아이 엔리크 데 세구라…. 그들의 이름까지 기억한다. 대학 입학시험에 이런 이름들만 나왔다면 나는 전국 수석을 차지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다. 그런데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게바’라는 새 이름(게바를 라틴어로 옮기다가 베드로가 되었음)을 예수님에게서 선물받았다. 이후 베드로는 이름값을 하면서 교회의 굳건한 반석이 되었고, 철권통치 로마제국과 짱짱하게 맞서 싸웠다. 새 이름은 이처럼 힘이 세다.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아무개 엄마라 불리며 새 이름을 얻더라. 영자다 숙자다 미자다 경자다 하는 이름들 모두 어찌 되었을까. 수박향기가 나던 이름 수자는 이름값대로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다. 제비꽃처럼 단아하던 정자는 군청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살더라. 그리운 기억 속 이름들 말고 ‘옮겨영’이라는 새 이름까지 얻어들으며 독선과 배반의 정계에 발을 담근 분도 계시다.
임의진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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