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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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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하며 살 때 일이다. 예배시간에 느닷없이 “저그요!” 하고 누가 손을 높이 들어서 보았더니 진등댁 할매였다. “왜요?” “조퇴할라는디 나 잔 시켜주쇼” “무슨 일이신데요.” “밖에 잔 보시란 말이요. 소낙비가 안 내리능가요. 마당에 빨래도 널어놨고 고추도 뽀슬라고(빻으려고) 팽상에 널어놨당게요.” 설교의 절정부였는데 이하 내용은 죄다 까먹을 수밖에. 학교에서 조퇴는 봤어도 교회에서 조퇴는 처음 보았다. 햇살 쨍쨍한 날 빨래가 보송보송 잘 마를 법한 날도 할매는 또다시 조퇴를 감행했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이런 귀여운 분들이 주눅들지 않고 큰소리 높이며 떵떵거리는 재미난 시골교회였다.
요란하게 찬송가를 부르며 박수를 치는 일도 없고, 아멘을 크게 외치는 일도 없는 조용한 교회. 매 주일 찾아와 내 수염 텁수룩한 꼴을 봐야 하는 고충과 쇼맨십 제로인 답답한 목소리를 빼면 스펙터클 어드벤처 흥미만점인 일상들이 쉼없이 펼쳐졌다. 젊은 목사의 설교는 기존에 들어왔던 성경 말씀과 정반대에 가까워서 교인들은 뜨악해했다. 축복보다는 감사에, 부요함보다는 자족에, 기적보다는 일상에 집중하자고 설교했다. 열광의 도가니 대신 사랑의 도가니가 되도록 밑불을 지폈다. 불의와 전쟁이 판치는 세상에 정의와 생명,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방언이요, 예언이라 말씀드렸다. 시끄럽게 울며짜며 기도하길 좋아하고, 말쑥한 양복차림 목사를 존경하는 교인들은 다른 교회로 도망치듯 떠나갔다. 소음이 걷히자 교회당에 비로소 산새들이 찾아와 지저귀고 풀벌레가 편히 울기 시작했다. 교회를 떠나 임씨로 살면서 띄운 그간 내 시골편지도 이런 실천행의 연장선이었다. 신은 가까이에 계신다. 우리 안에, 사랑 안에.
<글·그림|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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