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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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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 바닥에서 핀 꽃
대천 어항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오른 야트막한 언덕
바다가 가까워 바람이 심술이라도 부리면
바닷물이 튈 것 같은 곳에 정자가 있고
정자 앞엔 그리 넓지 않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는데
잔디 틈에 웬 붉은 꽃이 보인다
가만 보니 연상홍이다
세 갈래로 갈라진 붉은 꽃이 땅에 기대 피어났다
잔디를 깎는 사람이 나무를 못 본 탓이리라
하긴 보았다 해도 키 작은 나무를
따로 남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맑은 눈과 따뜻한 마음과
섬세한 손길이 필요했을 터
세심한 마음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날카로운 기계 날에 한순간 잘려나간 건
연상홍의 목이었을까, 허리였을까, 손목 혹은 발목이었을까
어, 하는 사이 내가 없는데
피할 틈도 아파할 새도 없이 내가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래도 나는 꽃, 꽃으로 피어난다
존재가 지워진 자리엔 눈에 띄지 않는 슬픔이 뿌리로 남아
붉은 피 토하듯 피어난 연상홍은
너는 네가 지워진 자리에서 어떤 피를 흘렸냐고
무슨 꽃이 되었냐고
그걸 묻기 위해 피어나기라도 한 듯
잔디 틈 땅바닥에 누워 붉은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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