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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오뎅과 뼈와 광주정신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911 추천 수 0 2013.12.15 17: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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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인 줄 알았는데 대륙 먼지라니, 좋다가 말았다. 안개 좋아하는데. 난 숨는 거 무지 좋아하는데. 어디 콕 박혀 사는 거, 잘 안 보이는 거. 하는 일은 많지만 대체로 나대지 않고 그렇게 살고자 애썼다. 그런데 염소들 한가히 풀 뜯던 들판에 서리만 홀로 하얀 것처럼 무언가 서리처럼 내 마음에 켜켜이 쌓이는 것이 있었다. 오뉴월 한이 서리처럼 내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오월 광주. 옛 도청 앞 분수대 곁에 광주정신으로 빚어낸 최초의 시민자생 예술공간 ‘메이홀’을 열어 그곳 관장 일을 보고 있다. 그래 가끔 행사 있을 땐 축사 한답시고 광주엘 나가곤 한다. 엊그제 쌀밥눈이 훠훠 내리던 날, 치과의사 형이랑 둘이 눈발을 헤치고 메이홀 근처 초밥집에 들렀었다. 쫄깃한 곤약과 유부, 굵은 무가 장국에 익혀진 오뎅국물. 따뜻하게 덥혀 김이 피어오르는 청주 한 잔씩. 팔순이 넘은 주인할매가 삶아온 오뎅 국물을 그 숨기 좋은 골방에서 우걱우걱 들이켰다.


골목마다 리어카에 실려 데워진 오뎅이나 어묵. 마치 광주 5·18의 주먹밥처럼 가난한 행인들의 빈속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들. 차들이 뭉개고 가는 소음에도 꼬치 오뎅을 깨문 아이들의 환호성은 간지럽고도 선명하다. 피부에 옻이 벌겋게 오르듯 오뎅 국물을 마신 얼굴마다 복사꽃 피고지고. 생선은 어쩌자며 자신의 살뿐만 아니라 뼈까지 내어주어 오뎅이 되었을꼬. 오뎅 한 양푼에 담긴 바다 생선들이 골목에서 골목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든다. 눈길에 미적미적 동무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초밥집 골방은 늦은 밤까지 훈훈했었다.

 

뼈를 깎는다는 말이 있다. 뼈란 중심이요 최후의 전부렷다. 마음을 다잡을 때도 허리뼈를 곧추세우는 일이 맨 먼저여야 한다. 닭발도 그렇지만 뼈를 바수어 만든 음식은 서민들이 즐겨 찾는 먹거리요 찬거리. 뜨신 오뎅과 어묵의 겨울이렷다. 누군가에게 내 뼈를 내어주듯 뜨거운 전부를 나누며 참세상을 꿈꾸시는가, 그대. 배꼽까지 따뜻해지는 국물을 나누는 우리들,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라 ‘아무도 남이 아닌’ 세상. 오! 오뎅 국물 그릇 속에 있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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