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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거룩한 손길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6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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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531.거룩한 손길


한동안 신작로엔 벼들이 길다랗게 널렸다.
낫으로 베어 탈곡기로 털던 옛날과는 달리 요즘엔 콤바인 기계로 추수를 하다 보니 벼를 말리는 일이 또한 큰 일이 되었다. 벼를 베어 한동안 논에 두었다가 나중에 벼가 마른 후 타작한 옛날에 비해 기계가 좋아진 요즘에는 아예 벼를 베는 순간 탈곡은 물론 가마에까지 담겨 나오니 천상 말리는 일이 나중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벼를 말리는 장소로는 신작로 이상이 없다. 검은 아스팔트인 신작로는 이따금씩 차들이 다녀 위험하긴 하지만 벼를 가장 빨리 말릴 수 있다. 아침에 널고 저녁에 거둬들이는 손길이 분주하다.
고무래로 쓱쓱 펼치면 되는 아침에 비해 거둬 들이는 저녁 손길은 더디기도 하고 고되기도 하다. 한 군대로 벼를 모아 퍽퍽 퍼담는 일은 그나마 쉬운 일, 그리고 남은 바닥의 낱알들이 힘들다. 나중에 가선 한 알 한 알 주워야 한다. 갈수록 해가 짧아져 그때가 되면 대개는 어둘녘인데, 남아있는 낯알 한 개 한 개를 어둠 속 줒어 담아야 한다.
까짓 볏가마 한 가마에 몇 만원, 그것 생각하면 바닥에 남는 낱알들은 돈도 아닌데, 그래도 그게 아니지, 먹거리를 그렇게 다루면 천벌 받지, 한 알 한 알 주워 담는다.
이 한 알 건지기 위해 그동안 흘린 땀이 얼만데, 어둠 속 마지막 한 알까지 벼 알을 담는 손길, 손길들, 거룩한 손길이 따로 없었다.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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