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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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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516. 단강국민학교 운동회
펄럭이는 만국기, 하얗게 그은 운동장에 새 금들, 단강국민학교 운동회가 열렸다. 어릴적 기억으로는 소풍과 다름없이 가장 신나고 가슴 뛰던 날, 아이들 뛰는 모습을 구경하러 학교에 갔다. 전해받은 순서지엔 47회 운동회라 써 있는데 운동장에 아이들은 전교생이 60여명 머리 위 펄럭이는 만국기 숫자만도 안 됐다.
도시의 한 학년 한반이 소풍을 나온듯한 적은 수의 아이들을 그나마 청군백군으로 나누니 더욱 작아 보였다. 깃발을 흔들며 목에 힘줄을 세우며 부르던 응원가도 달리기를 하러 두 학년이 빠져나가자 그치고 말았다.
세 명이, 네명이 그러다가 두명이 뛸 때도 있었다. 꽁찌래야 2등이다. 여차하면 칠팔등으로 밀려 공책 하나 타기 힘든 도시 아이들에 비해 저런 등수는 그래서 좋은 걸까.
아주머니들은 서너 조 나와 뛰었고 이어 벌어진 청년 달리기는 몇 번의 안내방송 에도 출전선수가 없어 무산되고 말았다.
아마 그중 시간이 많이 걸렸던 건 ‘나는 강태공’이라는 노인네들의 낚시 순서였던 것 같다. 출전 선수도 제법 많았다. 느릿느릿 긴 낚시막대를 들고 중앙으로가 낚싯대를 드리우면 소주며 담배며 화장지며 과자 등이 걸려 나왔다. 여기저기 노인들의 술자리가 자연스레 벌어졌다.
“하늘의 축복인 양 가을 햇살이 쏟아지고 흐르는 남한강은 더욱 푸르고, 오곡백과 무르익은 이때 우리들은 마음껏 뜁니다.”
선생님의 방송이 드문드문 드러나는 허전함을 메우려는 듯 간간이 이어졌다.
“오리 댕길때만 해두 이렇진 않았어유. 동네 큰잔치였쥬.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여 정말 신이 났는데... 그때만 해도 운동회는 꼭 추석 전날 했어요 추석에 고향 찾아 온 사람도 한데 어울릴 수 있어 참 좋았는데...”
지난날 돌이키는 어른들의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왠지 모를 쓸쓸함에 마음껏 박수 한번 치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단강국민학교 가을운동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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