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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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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새들의 염불, 새들의 찬송
하늘과 땅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과’가 있다는 대답은 유머 일번지 정답이겠고, 새가 있다는 답은 시인의 대답일 것이다. 나는 시인의 답을 정치인이나 학자의 답보다 신뢰하는 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 흠. 오늘 아침도 나는 새들의 염불, 새들의 찬송 소리에 눈을 떴다. 깊은 산중이라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다. 마을까지 내려온 건 배고픔 때문이리라. 마당의 돌들 위에 묵은 쌀들을 던져둔다. 나 혼자 배부르게 잘살면 무슨 재민가.
새란 말은 사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늘과 땅 사이를 메우는 존재.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 우리는 언제부턴가 새와 마음을 나누며 살지 못하는 거 같다. 그래서 하늘의 음성, 하늘의 심성과 멀어진 건지도…. 산촌에 눈이 내리면 가장 반가운 발자국은 바로 새 발자국이다. 오종종 새겨진 앙증맞은 새의 발자국. 아직 풀지 못한 추위보따리가 남아 있을 텐데, 눈 소식이 드물다보니 새 발자국도 자주 못 봐 아쉬운 마음이다.
르네상스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시장 모퉁이에서 바구니에 갇혀 판매되는 새들을 보면 당장 사들여 공중에 날려주곤 했다 한다. 새처럼 날고 싶어 아예 인류 최초로 행글라이더를 제작, 고지대에서 뛰어내릴 계획까지 잡았는데, 제자였던 조로 아스토로가 미완성품으로 도전하다 그만 추락사하고 말았다. 슬픔에 젖은 다빈치는 제자가 새의 영혼이나 된 것인 양 시시때때로 창문을 열어 새들에게 모이를 던져주곤 했단다.
지난 칠팔십년대 군부독재와 싸우다 감옥에 갇힌 양심수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후 권력이 자본으로 옮겨지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징벌방에 갇히고 있다. 새가 그만 철창에 갇히는 것과 마찬가지렷다. 과격한 건 그들 노동자가 아니라 탐욕에 찬 자본가들이며 주구가 되어버린 권력이 아닌가. 새장과 감옥, 죄인 말고 의인을 가두기도 하는 감옥…. 늙어 방에 갇힌 할매들이 사는 이곳도 감옥이나 진배없다. 이 옥살이는 자기가 밥까지 해먹어야 하고, 보일러도 켜야 한다. 영혼이 되어 하늘을 훨훨 날 때까지 노구는 겨우내 서럽고 고달프다. 하늘과 땅 사이에 승냥이보다 새가, 구속이 아닌 석방의 소식이 더 많길 기도하는 아침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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