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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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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하얀 까마귀, 하얀 검둥개
수십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랬다. 까마귀가 흰 눈을 뒤집어쓰고 깍깍 울어대는 도쿄에서 빙판에 미끄러지며 일을 보았다. 우리나라 동해안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리타 공항은 비닐 깔개와 침낭까지 배급된, 제 시간 환승하지 못한 여행객들로 매우 혼잡하였다. 다행히 비행기는 나를 인천까지 무사히 데려다주었다. 일본보다 위쪽인 담양이 오히려 순한 봄바람 불고, 오키나와나 되는 것처럼 남국의 우쿨렐레 소리마저 ‘깔맞춤’이구나.
내 검둥개 차우차우, 이름도 우스운 마오쩌순이가 꼬리치며 반기는 집. 이 녀석도 흰 눈이 내리면 까마귀처럼 가만히 뒤집어쓰고서 열을 식힌다. 만주 벌판에서 살아야 할 개인데 더운 날씨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야. 털을 밀면 모기들이 또 가만 안 놔두고. 살며시 홑청 이불이라도 덮어주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로 벌레들에 쩔쩔맨다. 드라큘라 백작 모기를 무서워하는 주인장도 마찬가지.
눈 소식을 들으니 비로소 겨울 사는 맛이 난다. 옛사람들은 눈이 수북하면 훗날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믿었다. 이삿날 함박눈이 오면 부자가 된다고 믿었고, 결혼식 날 눈이 내리면 백년해로한다며 웃고, 처마 끝 고드름이 많이 달리면 물 걱정 없이 농사짓게 생겼다며 반겼다. 보리밭에 쌓인 눈을 보아 내년 농사를 어림짐작 점쳤다. 폭설과 태풍에도 주저앉지 않고, 농부들은 공수부대보다 용감하다.
압정처럼 땅에 박힌 민들레 뿌리가 되살아날 날씨였는데 갑자기 대설경보에 뒤통수. 그래도 눈 속에서 딴딴해진 꽃과 만날 약속에 부푼다. 매화꽃 나무 아래 오줌을 누던 할머니 돌아가신 뒤부터 지상의 봄은 샤넬 향수보다 향기롭고 ‘몸뻬’ 무늬보다 화려해라.
난롯불에 고구마 구워 먹는 점심나절. 끝이 빨간 부지깽이로 거뭇하게 그을려진 고구마를 찾아 꺼낸다. 김이 모락모락, 찰진 고구마. 빽빽한 눈구름과 시샘추위에 움츠려들 수만은 없지. 먹고 기운을 차리자꾸나. 새들이랑 개와도 나눠 먹으려고 절반을 떼어놓았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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